“나그네는 요즘 차를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고. 듣건대 죽은 뒤 고해의 다리를 건너는 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 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말고 베풀어 주소서.”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선사에게 보냈던 편지다. 구강포 바다가 보이고 천연 기념물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전남 강진의 천년 고찰 백련사. 백련사를 품고 있는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 옛 이름은 다산이었다.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호가 바로 이 다산이라 한다. 강진 유배 시절 백련사 차를 즐긴 그는 명맥이 거의 끊어졌던 한국 차 문화를 다시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찻잎을 따는 백련사의 주지 스님 - 출처: 백련사 홈페이지
백련사는 지금도 차를 만든다. 여연 주지 스님이 직접 만드는 수제녹차로 유명하다. 자연의 정기를 받아 첫물이 오른 살찐 잎을 얻어서 고운 정성으로 만든 잎차 인 일지청향, 구강포 바다의 숨결로 첫물이 오른 살찐 잎을 발효시켜 만드는 남도의 노을 빛 같은 자하차, 곡우 이전에 수확한 첫물 찻잎으로 만든 백련사의 최상급 수제 잎차 반야차. 백련사의 차방 ‘만경 다설’에서 이를 맛본 사람들은 그 차의 맛을 잊지 못해 전국에서 주문을 해 마시고, 선물하며 즐긴다고 하니 정약용의 마음이 짐작이 된다.
자연의 정기를 받은 잎차로 만든 일지청향 - 출처: 백련사 홈페이지
이런 백련사의 차를 인천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됐다. 인천아트 플랫폼, D동의 커뮤니티 홀 안에 ‘찻집 다설’이라는 이름으로 백련사의 전통 찻집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나라건 차는 그 나라의 날씨와 취향 등에 맞춰 나오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차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커피 붐이 일고 카페가 늘어 커피는 더 접하기 쉬워진 반면 우리 차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젊은이들과 친숙해지겠다는 마음으로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실내는 단출하다. 백련사의 이름은 커녕 종교적인 느낌도 전혀 없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되는 홀에 음료를 제공하는 편의시설 개념으로 입점한 것도 이유지만, 우리 차 보급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찻집 관리를 맡아서 하고 있는 김진경 매니저는 티마스터 공부를 하며 차를 오랫동안 접해왔다. 커피 7년, 홍차 3년 쯤.
“사실 저만 해도 우리 차는 어렵다고 느껴져서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해 볼 생각으로 계속 미뤄왔었어요. 지인의 소개로 백련사의 일담 스님을 만나 시작하게 됐는데, 정말 잘한것 같아요”라며 웃는 그녀는 요즘 전통 차에 푹 빠져있다.
찻집의 대표인 백련사의 일담 스님은 원래 서울 쪽에 접근성이 용이한 공공기관 같은 곳을 알아보고 있었으나 인천아트 플랫폼 관장과의 인연을 계기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하다 맺은 인연이었다.
‘찻집 다설’이 자리한 커뮤니티 홀에는 쉬러 오거나 미팅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메뉴를 보고 생소해서인지 주문을 어려워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그림이나 사진을 첨부해 알기 쉽게 하고 싶지만 메뉴 준비부터 서빙까지 모두 혼자 하다 보니 지금은 여력이 없다.
호기심에 주문을 하거나, 잘 알고 주문을 하거나 어떤 경우든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라고. 얼핏 보기에도 메뉴판의 글자들이 확실히 여느 카페와는 좀 다르다.
메뉴판을 본 윤태민 씨는 “잘은 모르겠지만 다 마셔보고 싶다. 하루에 한 잔씩 마시면 한 달이면 건강해져 있을것 같다.”며 한참을 더 들여다봤다.
오미자 차, 유자차, 매실차, 솔잎차, 오디차 같은 종류는 그래도 낯설지 않은 메뉴들이다.
제일 인기 있는 메뉴가 뭐냐고 물으니 오디란다. 오디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어 오디 요거트 종류를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차는대부분 백련사에서 직접 올라온다. 오디는 채취하고 숙성기간이 긴 편인데 지금은 품절되어 아쉬워하는 손님이 많다.
“오디 마시려고 왔는데, 아쉽지만 어쩔수 없죠 청포도 주스도 상큼하고 맛이 좋네요.”
김석현 씨도 계절 메뉴인 청포도 주스로 이른 더위의 갈증을 달래야 했다.
뽀빠이 우유, 사과마차, 신데렐라 호박마차, 매실에 반하나안반하나 요거트.....
다른 쪽 메뉴판의 이름들이 재밌다. 국산 재료로 만든 퓨전 음료라고 할 수 있겠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천연재료만 써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주변에 차이나타운이나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고 들르는 가족단위의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메뉴들이다. 아이들은 요거트 종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시금치와 바나나를 넣어 만든 뽀빠이 우유도 이름 때문에 거부감 없이 마실것 같다. 모두 김진경 매니저가 직접 개발하고 이름도 직접 지었다.
샛노란 호박과 마가 듬뿍 들어간 신데렐라 호박마차. 한 모금 들이켜 보니 신데렐라가 왜 숨겨두고 몰래 마셨는지 알겠다. 고소하고 담백한 건강 덩어리가 달콤하게 목을 넘어간다.
갈증과 허기까지 모두 해소됐다.
단골손님이 늘고 있다. 관광으로 들렀던 수원의 어느 손님은 차 맛이 너무 좋다며 다른 친구들과 일부러 찾아온다. 인천아트플랫폼 내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많이 온다. 날이 더워지니 비타민 음료처럼 매일 달빛 레몬에이드를 마시러 오는 사람도 있다. 파란색 리퀴르를 넣어 바다색이 난다. 서브 메뉴로 커피를 넣은지는 한 달이 안됐다. 아무래도 가끔 찾는 손님이 있어서 머신이 아니라 모카포트를 이용한다. 자하차와 커피를 섞어 만든 다설 커피는 실수로 탄생한 커피라고 한다.
김진경 매니저는 “바쁘다 보니 실수를 했는데 아까워서 그냥 마셨죠. 능력있는 바리스타도 인정한 맛있는 커피예요.”라는 말과 함께 “직접 개발한 레시피들이다 보니 책임감이 크지만 확실히 보람도 크다.”며 웃었다 .
김진경 매니저
수익을 낼 욕심은 없다. 차를 보급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크다 보니 당장의 이익보다는 멀리 길게 보고 있다. 오픈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틀을 잡는게 우선이라 홍보나 분점은 아직 이르고 몇 개월 더 지켜본 후 홍보나 프로그램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차 문화교실을 운영할 생각이다. 토요일에 아트플랫폼에 수업 들으러 오는 사람을 위한 강좌나 상주 작가들과 티타임, 티토크를 생각 중이다. 차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
백련사의 템플스테이 등의 일정으로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만 찻집에 들른다는 일담 스님의 계획이다. 몇 개월 후면, 차 ‘다’(茶), 말씀 ‘설’(說)이 담고 있는 의미 그대로 차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차와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어느덧 커피 천국이 되어버린 국내에, 백련사의 ‘찻집 다설’이 정성과 건강이 담긴 우리 차를 널리 알리고 전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 조선시대, 명맥이 거의 끊어졌던 한국 차 문화를 다시 일으켰던 정약용처럼.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해안동 1가) 인천아트플랫폼 D동
영업시간 : 10:00~19:00
휴점 : 매주 화요일
주란 청년기자 rri0217@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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