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인천 역사] 13세기 간척의 시대를 연 강화도!
안녕하세요, 인천시청입니다.
책으로 보는 인천 100선 이야기 일곱 번째 시간이 왔습니다!
오늘은 13세기 간척의 시대를 연 강화도에 대해 공부해보도록 할게요.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 수요의 충족을 위해
새로운 경지를 개발하는 사업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는데요.
이중에서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안의 간석지를 농경지로 변화시키는 간척사업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도 경험 속에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충분히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간척은 가장 먼저 방조제를 쌓아 해수의 유입을 차단하고,
저수지 등의 수리시설을 만들어 토양의 염분을 빼내는 체염작업을 이루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지요.
많은 인력과 물자가 들어가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만큼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간척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와서야 처음 보입니다.
고려시대의 간척사업은 강화도에서 시작되었는데요.
몽골침입으로 인한 강도시대가 열리면서 도성이주민들의 자급자족을 위한 간척사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종대에 강화도의 제포와 와포를 막아 좌둔전을 만들고
이포와 초포를 막아 우둔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전시의 군량미 확보를 위한 둔전의 개발을 목표로 간척사업이 시행된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간척사업이 더욱 확대된 시기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인데요.
특히 조선후기 강화와 교동이 군사적 요충지가 된 이후로는
대규모 인력동원이 가능해져 간척이 더욱 촉진되었습니다.
17세기 중반 효종대에는 강화유수 홍중보, 조복양, 서필원에 의해
굴곶언, 대청언, 만월언, 가릉언, 장지언 등이 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1706년(숙종32)에는 강화유수 민진원에 의해
인천, 김포, 연안, 충덕 등의 군병 11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선두포 축언이 이루어졌는데요.
선두포 축언으로 얻어진 땅은 1천여 섬지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간척사업으로 강화의 지형이 거의 오늘날과 같이 변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