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자들의 공통적인 습관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선라이즈(일출), 선셋(일몰)플레이스를 찾아 다니는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여행정보책자들이 일출, 일몰 장소를 추천일정에서 항상 빠뜨리지 않기 때문에 말 잘듣는 나와 같은 여행자들은 꼭 가볼만한 곳에 별표를 해두곤 한다.
얼마 전 다녀온 그리스 산토리니 여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후 6시만 되면 피라마을, 이매로비글리, 이아마을 등 산토리니섬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이아마을의 작은 성채로 모여든다.
그리고 성채주변의 카페나 호텔, 계단, 호텔 담 등 엉덩이를 붙일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삼삼오오 붙어앉아 곧 시작할 매일 펼쳐지는 지구 최고의 쇼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일출.일몰이라는 것이 1년에 1번 오는것도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들은 왜 유독 낯선곳을 여행할때만 이렇게 일출. 일몰을 보기 위해 부지런해지는가?
게다가 황홀한 일몰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도 빠뜨리지 않는다.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일몰이 가장 멋진곳에서 꼭 함께 일몰을 봐야지.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런 보통의 생각은 나에게도 이미 해당이 되었다. 그것도 여러번씩이나
일상을 지낼때는 몰랐던 것들, 순간들, 꼭 어디론가 떠나야만 원래의 내 자리가 소중하고 내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인지 알게 된다는 것은 정녕 진리인가보다.
어쨓든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보겠다 그리 다짐했었다.
그리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가장 아름다운면서도 가기가 편한 을왕리해수욕장. 다들 알다시피 서해는 일몰이 아름답지 않은가!!
가을바다와 노을, 왠지 이 두 단어의 조합은 보지 않아도 천생연분일것만 같다.
예상했던 대로 을왕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바다'는 왠지 멀리 있을 것 같은 편견을 아직 가지고 있다면, 하루안에 버스타고 다녀올수 있는 을왕리의 매력은 이미 충분히 어필한것 같다.
게다가 바람쐴겸 '공항가는길' 에 살짝 더 시간을 놓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다행히 우리동네에서는 '302번 버스'를 이용하면 공항을 들려 을왕리나 왕산까지 갈수가 있다. 돈은 왕복 6,000원이면 충분하다.
을왕리에 도착한 5시 30분쯤, 계절은 아직 가을이라고 하는데 직접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와 바람의 세기는 겨울과 더 가까웠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푸르던 바다빛도 검게 변하고 있었고, 저기 수평선 너머로 구름에 가려진 붉은 기운이 곧 노을이 진행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 위로 짝을 지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수평선을 향해 한순간이라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빠른 속도로 사라지려는 태양,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떠오르리라는 것을 알지만, 왠지 오늘의 동그랗고 멋졌던 태양을 보내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어가고 오늘 자기할일을 다 마친 큰 배는 파도의 장단에 맞춰 그저 흔들흔들 거리기만 한다.
이 순간 누구하나 시끄럽게 하는 이 없이 말없이 한곳만을 바라보는데 잠시 동안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 조용할 뿐이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사라지고 다시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작은 하얀거품들을 흔적으로 남기는 모습이 참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모래위 작은 조개, 굴 등 한때는 살아있었던 것들의 알맹이 빠진 껍질들이 모래 사장위에 흩어져있고, 저 쪽은 뭔가 큰 글씨로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메세지가 적혀있었다. 다 먹고 버려진 맥주깡통, 누군가에게 달콤함의 기쁨을 선사했었을 바나나우유, 누군가가 담긴 발자욱 모두 실체가 없이 그 흔적만 남겨진 이 바닷가. 그래서 내가 아는 이는 바다가 쓸쓸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노을은 남기고 간 자리도 황홀하다.
여전히 붉으스레한 기운이 하늘전체를 감싸고 있고, 바다는 또 그 하늘빛을 반영해 바다빛 조차도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노을을 바라보는 이 순간은 마음도 평온해짐이 느껴진다. 딱 이순간의 분위기가 난 참 좋다.
차갑게 얼굴을 할퀴는 세찬바람도, 밤의 시작을 알리는 검은 하늘빛도 이처험 사람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붉은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밤이 온 후에야, 배를 채우러 발길을 돌렸다.
을왕리하면 바로 '조개구이'가 나올정도로 을왕리와 조개구이는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인것 같다.
을왕리해수욕장을 낀 둘레의 모든것이 화려한 불빛의 조개구이집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조개구이 집 앞을 지나가는 길은 봄,여름,가을, 겨울 상관없이 항상 쉽지가 않다.
어느 지역이나 다 있겠지만 자신의 가게로 한명이라도 기를 쓰고 데려가려는 을왕리 조개구이집 손님유치담당직원들의 열정은 그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어떤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차를 막고서면서까지 그들의 업무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그러고보면 외국에는 거의 볼수 없는 이것 또한 한국만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왠지 그들의 모습에 정이 느껴질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열띤 수고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갈 곳은 유일하게 손님유치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을왕리 바로 맨 마지막 집이었는데 어촌계에서 운영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더 푸짐하다고 들었다.
제주도여행갔을 때도 어촌계나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먹은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가격이나 신선도면에서 다른집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 기억이 났다.
매번 을왕리 올때마다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 오고 싶었는데 같이 간 지인도 이곳을 아는지 오늘 조개구이는 이 집으로 당첨!!
안으로 들어가면 테이블 옆으로 바로 바닷가가 보이는 풍경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자주 곳인지 모르겠다.
성인 4명이서 조개구이(대)자를 주문하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금액은 약 6만원 정도
언젠가 횟집 아들에게서 회는 겨울에 먹어야 한다고 들은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서 인지 더욱 싱싱하게 보이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큰 가리비 껍질 위에 조개 알맹이들을 넣고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구워 먹는 이 맛!
구워진 조개들이 입을 벌리면서 '탁' 하는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거품을 만들어 내는데 그 소리마저 따스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겨울의 소리인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순간의 따스한 분위기와
입 안으로 들어가는 뜨겁고 쫄깃하고 고추장의 새코롬함이 어우러져 마음도 배도 든든해진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가을바다 노을 여행,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나올 수 있는 곳, 맛있는 조개구이와 함께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곳 을왕리 해수욕장 그리고 너무 아름답던 일몰까지~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 오늘 난 그 말에 적극 공감했던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