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인천시청입니다.
책으로 보는 인천 100선 이야기 다섯번째 시간이 왔어요~
오늘은 개천대제와 성화 채화 마니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개천대제란 국조 단군의 탄생과 고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제례입니다.
매년 10월 3일 정부 주도의 공식 '개천절' 행사와 더불어 마니산 참성단, 태백산 천제단, 지리산 삼성궁 등
전국의 단군 성지에서 각 지방자치제 및 민간단체, 종교단체의 주최로 개천대제가 열렸는데요.
이드 개천대제 중 역사적 시원성과 고유성, 그리고 대표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은
누가 뭐래도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입니다.
참성단은 평양의 승령전, 구월산의 삼성사, 묘햐안의 단군굴, 강동의 단군릉, 강화도 삼랑성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군 관련 유저지의 하나이며, 또한 1949년 처음 지정된 개천절 행사의
공식 의례 장소였다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재야사서라는 한계가 있지만 '환단고기'에는 참성단의 축조시기를 단군왕검 51년으로 못 박고 있죠.
그러나 정작 고려 시대 이전의 여타 다른 사서에서는 참성단의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고려 말 이색과 이강의 시에서도 누가 축조한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막연히 태곳적의 일이라 하여
참성단의 단군시기 축조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요.
이처럼 참성단의 축조시기는 문헌상 정확히 고증할 수 없지만,
적어도 고려 말부터는 참성단에서의 제례가 끊이지 않았음은 많은 기록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몽골의 침입을 받던 강도시기에 민족의 결속을 다지는데 있어 중요한
정신적 토대이자 역사의 근원인 단군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지요.
참성단 제례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하고 있던 만큼 이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태종~세종 때까지 존폐를 반복하였지요.
세조 때 일시 부활하기도 했지만, 결국 중앙의 국가 제사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그러나 지방 차원에서의 제사는 조선 후기까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참성단이 민족의 성지, 단군 성조의 천제처, 제1의 생기처로 다시 주목받은 시기는 20세기 들어서입니다.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과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 민족의 시조로써 단군이 재인식된 것입니다.
아울러 1945년 해방 후 개천절이 부활되며 참성단은 개천절 경축행사의 상징적 장소가 됩니다.
특히 1946년부터 시작된 성화 봉송이 주목되는데요.
1946년 10얼 27일 서울 저동 소재 대종교총본사의 천진전에서 채화된 성화가
마니산 참성단까지 릴레이 방식으로 봉송된 것입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성화 재화식
1948년의 개천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 맞는 개천절이었습니다.
개천절 행사의 중심은 서울운동장에서 거행하는 기념식이었지만
참성단에서도 신익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30여 명과 안재흥 전미군정 민정장관 등
관민학생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또한 주목되는 사실은 기념식과 더불어 고식에 의한 제사도 함께 거행되었다는 점입니다.
1949년의 개천절은 개천절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때의 개천절부터 음력이 아닌 양력 10월 3일이 기념일이 되었고,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과 함께 국가의 4대 국경일의 하나가 되었지요.
또한 이 해의 개천절은 정부의 공식적 기념식이 서울이 아닌 강화도에서 치러졌다는데 그 의의가 큽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1952년까지 참성단에서의 개천절 기념식은 중단되었지요.
1953년 개천절에 참성단에서 다시 치러진 기념식은 공군이 주최하였지만
1949년과 같은 국가 차원의 행사로서의 위치는 상실한 것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개천절 기념식은 서울의 중앙청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후 참성단에서의 개천절 행사는 강화군 자체의 행사가 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허나 현재까지도 매년 10월 3일이면 개천대제라는 이름의 의례가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1955년 제36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는 역사학자이자 체육인인 이상백 박사의 제의로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 전국체전이 벌어지는 주경기장까지 봉송하는 제도가 마련되었지요.
성화 채화가 비록 고대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 올렸던 올림픽 전통을 모방한 것이기는 하나,
'새로운 전통'의 창조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참성단 제례를 국가의례에 버금하는 행사로
승격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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