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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두발로 찾아가는 역사 현장 이야기, 인천 평화 올레길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바다와 항구 그리고 국제도시까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천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코스들. 현재 인천이 자리하기까지 그 뒤에는 숨겨진 역사의 현장들이 자리한다. 나 혼자 찾기에는 쉽지 않은 인천의 역사와 그에 얽힌 전쟁 그리고 평화를 이어내는 발자국들을 좇아가 보자. ‘인천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에서 주최한 인천평화발자국을 함께 해보았다.


예부터 사람 살 곳은 따로 있었네

느끼고 배우며 인천지역의 평화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주말을 맞아 부평구 청천동에 자리한 멧골문화센터에는 부원중 역사동아리반 학생들이 인솔교사와 모였다. 또 인천역사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도 함께 한 자리.





“부평삼거리를 원통이고개라고 불렀어요. 예부터 강화도의 손돌목 물길이 너무 세서 그곳 생산물을 서울로 가져오기 힘들었죠. 그래서 굴포천을 뚫으려 했지만 실패하자 너무 원통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 원통이고개예요. 지금은 경인운하가 대신 생겼지만요.”

평화 올레길을 떠나기에 앞서 오늘 가볼 길의 유래를 소개하는 김현석 해설가. 인천의 옛 지도와 현재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살만한 곳은 그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지도는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계양산과 원적산, 만월산, 문학산으로 이어지는 수도권 방어산성이 자리한 인천. 구석기를 시작으로 청동기와 고려를 거쳐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친 인천은 그 역사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외세의 침입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현장들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조병창에서 육군기지창 그리고 부영공원

부평구 산곡동 롯데마트 길 건너편. 이곳에 가면 지붕들이 연결된 구옥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일명 영단마을이다. 부평지역 일대에는 1930년대 말부터 중일전쟁과 2차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을 지원하는 군수기지들이 자리했다. 


(사진설명. 일제시대 군수기지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거주터 영단주택)



김 해설사는 “영단마을은 군수기지에 나가 일을 하던 근로자들의 합숙소였어요. 일제 강점기 조병창에서 한국전쟁 후 현재의 부평 캠프마켓까지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집이죠”라고 말했다.

영단마을은 약 8평 내외의 합숙소들이 연결된 연립주택 형태다. 인천에서 영단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부평구 청천동과 산곡동 외에도 남구 숭의동과 용현동이다. 이를 위해 부평구 역사박물관에는 영단마을의 모형을 재확인하도록 꾸며 놓았다고.


(사진설명. 아직도 옛 흔적을 간직한 영단주택들)



(사진설명. 일제시대 군수기지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거주터 영단주택)



영단마을 외에도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곳은 1952년 한국전쟁 후 상의군인들의 공동체인 화랑농장도 있다. 조병창에서 영단마을 근로자들, 백마극장의 휴식 등등. 평화올레길 발자국의 다음코스는 어디일까. 


인천에 어린 역사의 현장과 현재 잇기

개항 130년 이래, 1940년대 조선총독부의 시가지계획에 의해 생겨난 영단마을에서 참가자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부평미군부대기지이다. 해방 후 약 3000여 근로자들이 일했다는 미군부대. 

이제 2016년 이전 계획을 앞둔 미군부대기지 부평캠프마켓. 지금도 군수창으로 향하는 철도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 또한 전쟁의 역사가 남겨다 준 또 하나의 인천의 현주소다.






인천평화발자국은 인천의 평화가 파괴된 현장을 전문해설가와 함께 탐방하는 평화 올레길 방식이다. 올해 10.4남북정상선언 6주년을 기념해 현장을 돌아보며 역사를 배우자는 평화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인천평화발자국 프로그램은 지난해 3회에 이어,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으로 동인천 자유공원(4월), 인천상륙작전기념관(6월), 월미도(9월)에 이어 오는 11월 17일에는 김포DMZ에서 인천의 평화를 되짚어볼 예정이다.

문의 : 인천 평화발자국 ☎032-428-2230


김정미 객원기자 jacall3@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