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찍는 사진관
송림동 38년 ‘현대사진관’
소풍을 다녀오면 사진관에 필름을 맡겼다가 몇 시간, 며칠을 기다려 사진을 받아들어야 하던 때를 기억한다. 손 안에 휴대폰으로 생생한 순간을 1초 만에 고화질로 저장하는 세상이 됐다. 어떤 사진이 나올까 궁금해 하던 두근거림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진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송림동 사거리 부근, 낡은 건물에 오래된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현대 사진관’이다. 분명 간판을 달 때에는 가장 현대적이었을 법한 모습이다. 지금은 쇼윈도에 걸린 오래된 얼굴이 짓는 미소마저 희미해졌다. 송 씨 부부는 38년 전 쯤 결혼 하면서 이곳에 사진관을 열었다.
“그 때는 건물이 깨끗했어. 이제 아무도 안 살아서 거의 폐허가 됐지만....”
40년도 더 되었다는 건물은 텅 빈 채 사진관만 남았다. 십년 전 건물이 헐리고 길이 난다는 말이 들려 접어야하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아직 그 자리다.
“아저씨랑 같이 하다가....돌아가시고 원래 하던 거니까 그냥 건물이 있는 동안은 계속 하려고....” 올해 5월이면 남편이 먼저 떠난 지 3년이 된다는 송 씨의 목소리를 따라 눈빛도 흐려진다.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사진관 안은 그동안 함께 나이 들어온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란 에어컨, 딸깍거리는 스위치, 손때 묻은 절단기.....박스테이프가 붙은 부피 큰 모니터는 오픈하고 얼마 안됐을 때부터 쭉 있었다. 사진 작업은 못해도 아직 쓸 만하다. 지루할 때 게임하면서 놀기 그만인데다 워낙 정 들어 버릴 수가 없다.
두세 달 전, 오래된 사진관을 찾는 어디 영화사 관계자가 들렀었다. 요새 이런 사진관 보기가 힘들다며 혹시 영화 협조가 필요하면 도와 줄 수 있는지 묻고 한참 사진도 찍어 갔단다. 한때 현대사진관도 4천만 원 넘게 주고 산 현상기, 인화기를 갖추고 돌잔치나 결혼식에 출장을 다녔다. 앉아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날들이었다. 배다리에서 송림 사거리까지 사진관이 열 개도 넘게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모두가 사진을 찍기 쉬워지는 동안 대부분의 사진관은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 이 동네 사진관도 하나 둘 문을 닫았고 현대사진관은 마지못해 기계를 처분했다. 약품은 비싸고 현상을 맡기는 사람이 없어 쓸모없어 진 것이다. 1억이 넘는 기계였는데 십 원 한 장 못 받고 고물상에 보냈다. 남편이 없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몇 백만 원 짜리 비디오와 카메라도 몽땅 보내 버렸다.
남은 거라곤 배경, 조명, 카메라뿐. 증명사진 촬영엔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출장도 현상도 하지 않는 요즘은 그나마 구청이 가까운 덕에 주민등록증이나 여권용 사진을 찍으러 오는 손님들이 있어 유지한다. 자식들도 다 키워 이제 혼자 먹고 살아도 되는 형편이라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할지는 송 씨도 모른다.
“젊기나 하면 더 배우고 새로 구상도 하고 전망 있는 걸 찾을 텐데, 내가 무슨 수로 투자를 하겠어. 올해 육십하고도 일곱이야....나이를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지.” 라며 웃는 그녀의 얼굴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곱다. 기계를 치우고 나니 손님도 일도 더 줄었다. 디지털 카메라 인화 손님이 오면 파일을 받아 거래처에 맡긴다. 급하다는 손님은 받을 수도 없다. 휴대폰 사진 인화는 기종이 많아 머리가 아프다. 젊은 사람들이야 쉽게 뚝딱뚝딱 하지만 나이가 많아 따라가기 영 어렵다.
그래도 어지간한 포토샵 기술은 다 구사한다. 젊은 사람들이 보고 감탄하는 경우도 있다. 오래 해온 일이라 수월하지만 어떤 땐, 옆에서 보던 학생들이 더 쉬운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주민등록증에 넣을 사진을 찍으러 온 손님이 “티 덜 나게 고쳐줘요. 다른 사람이라고 사진 안 받아 줄라~” 라며 모니터 옆을 지키고 섰다. 걱정하면서도 내심 더 예쁘게 작업하길 기대하다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완성된 사진을 자르는 능숙한 손놀림의 송 씨 뒤로 40년 전 그녀가 보인다. 머리, 화장, 손톱 색, 옷차림, 어느 하나 촌스럽지 않다. 젊었을 적엔 훨씬 더 고왔다. 남편이 떠난 뒤 앨범을 훑어보며 하나씩 고른 사진이 사진관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송씨 부부가 행복하게 빛나던 순간도 액자에 걸렸다.
영화 <수상한 그녀> 속 ‘청춘사진관’을 찾아가면 송 씨도 오말순(나문희 분)처럼 스무살 꽃처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청춘사진관’은 없지만 그녀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현대사진관은 오늘도 문을 연다.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118 / 032-764-9666
주란 청년기자 rri0217@naver.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http://enews.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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