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인천 역사] 공자상을 처음 모신 교동향교
안녕하세요, 인천시청과 함께하는 '책으로 보는 인천 100선 이야기' 12번째 시간이 돌아왔네요~
오늘은 교동향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 텐데요.
공자상을 처음 모신 교동향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향교는 수도 이외에 각 지방에 설치하여 유학을 교육한 관학교육기관이지요.
930년(태주13) 서경에 학원을 설립했다는 기록이나 987년(성종6) 경학과 의학에 정통한 박사들을
12목에 파견하였다는 기록 등을 볼 때 고려 초에 이미 향교가 존재하고 운영됐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허나 당시의 향교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요.
다시 말해서 향교는 그 설치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부터인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의 문벌귀족 문화가 전성기에 접어들었던 12세기 초에는 본격화 됐을 것으로 봅니다.
문헌상 등장하는 고려시대의 향교는총 29개교 정도인데요.
진주, 부평, 강화, 단양, 교동, 태안 등에 있었지요.
이 수를 고려시대에 설치된 향교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전 군현에 설치되지 못한 상황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 수령도 전 군현에 파견되지 못하였는데요.
'교동읍지'에 의하면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대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인종은 지방 향교의 확대 설치를 지시했던 국왕으로
인근의 강화향교가 1127년(인종 5)에 세워진 것을 고려한다면
교동향교 역시 인종대 전반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교동향교의 향후 동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료를 통해서도 확인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러나 교동향교는 고려시대에 존재한 수많은 향교들 중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죠.
즉 김득초의 '교동지'에 따르면 엣 교동읍지의 내용 중에
"공자와 제자들의 화상을 원에서 바다로 가져와 본읍에 이르렀을 당시
처음으로 문묘가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화개산 아래 솔 숲 사이에 공자의 묘가 있으며,
그를 볼 때 본교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향교임이 분명하다."고 언급하고 있지요.
물론 앞에서 보았듯이 교동향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였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위 일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위 일화에 따르면 1303년(충렬왕 29) 안향이 국학학정 김문정으로 하여금
중국에서 공자와 10철의 화상, 문묘에서 사용할 제기 등을 구해오게 하였는데
김문정 일행이 가장 먼저 기착한 곳이 교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13세기 말~14세기 초, 고려인들의 성리학 수용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화 되던 당시,
교동향교가 그 주요한 공간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문정 일행의 교동기착이 정부의 공식적인 편년사찬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교동향교는 공자화상을 처음 모셨던 공자묘의 수위가 되는 묘전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