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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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이란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34주년 되는 기념일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잘 아시겠지만, 신군부 정권에 맞서 광주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민중항쟁', '광주시민항쟁', '광주항쟁', '광주의거' 등으로 불리었으며, 과거 신군부에서는 이를 '광주사태', '광주소요사태', '광주폭동' 등으로 불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수습과정에서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주목받게 되고, 12.12사태를 통해 군부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듬해 봄 신군부는 국민들의 요구에 불응한 채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구축하며,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전국적인 학생운동 및 기타시위가 발생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13~14일에 걸쳐 전국의 37개 대학에서는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특히 5월15일에 발생한 시위는 야간까지 지속되고 신군부세력에 상당한 위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소강상태를 돌입하는 듯 한 시위는 5월17일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김대중 및 김종필 등 정치가들과 시위관련자들 체포로 이어지며, 이런 변화 속에 광주민주화운동은 발생하게 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행
과거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느 특정인물 및 배후세력에 의한 계획적인 무장봉기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보다는 자연적으로 일어난 시민운동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이 계엄군을 통한 무력진압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무력저항으로,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민중봉기 그리고 무력항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5월18일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전남대학교 앞 교문에서 집결한다는 결의에 따라 모이게 되며, 계엄군이 이들을 진압저지하며, 시위대는 광주역으로 이동하고 점차 시위대가 증가함에 따라 계엄군의 진압강도가 거칠어졌습니다. 이에 부상자가 속출하고 시위는 잠시 주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이 점차 가담하게 되며 학생시위에서 민중봉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시위대는 계엄군과의 접전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보이며, 또한 그동안 공정보도를 하지 못한 MBC와 노동청, 세무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탔습니다. 점차 시위대에 몰린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를 감행하며, 이에 따라 도시빈민은 물론 노동자, 농민들까지 참여하게 되고 또한 시위대는 무장의 필요성을 느껴 아세아자동차공장에서 장갑차와 군용차량을 탈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위대는 부족한 무기는 시외지역으로 진출하여 탈취하며, 탈취한 무기는 시민들에게 지급되고 도시에서는 시간전이 발생하며 무력항쟁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계엄군은 시위대에 밀려 광주 외곽지역으로 까지 퇴각하게 됩니다. 이후 수습대책위원회 등이 설립되어 계엄사령부와의 협상과정 및 무기회수를 둘러싸고 시위대 사이에서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강경파화 온건파 사이의 대립이 발생하게 됩니다. 강경파는 수습대책위원회를 비판하며, 그들만의 새로운 투쟁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외곽으로 밀려난 계엄군은 27일 새벽 외곽도로 봉쇄 및 전차 등으로 무장한 2만5000여명의 계엄군을 광주로 진주시키며 대대적인 무력진압에 나서게 됩니다. 결국 시위대는 연행되고, 광주 전지역은 계엄군에 넘어가게 되며 이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기간동안 1995년 파악된 정부발표로는 사망자 193명, 이중 군인은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이며 부상자는 852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결과
광주민주화운동은 신군부의 권력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김대중 및 주요 재야인사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내란혐위로 구속되며, 이 사건을 '김대중 일당 내란 음모사건'으로 발표합니다. 신군부의 집권은 결국 기정사실화 되면서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며 전두환 정권의 공식출범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구호로 과거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5.18특별법'을 제정하며 '12.12사건ㆍ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전두환ㆍ노태우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었습니다. 항소심에서 이들에 대해 전두환은 무기징역 및 벌금 2,205억원, 노태우는 징역 15년 및 벌금 2,626억원이 추징 선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소심에서 위 형량이 확정되었으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즈음하여 전두환ㆍ노태우에 대한 특별사면으로 석방하게 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의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과정 중에 일어난 하나의 큰 사건으로, 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운동에서 80년대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비록 신군부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한 계기가 되었지만, 이를 통해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 이미지 : 한겨레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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