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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장애인 무명가수의 '노래에 실은 사랑'



“어머니~안녕하셨어요? 점심 때 오곡밥은 드셨어요? 저도 여기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어요.” “지난번에도 와서 노래했었는데 기억나세요?”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셔요? 조금 있다가 신나는 노래 해드릴게요.”

“그래~반가워!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짙은 무대화장을 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가수 최영애씨(59세, 남동구 논현동)는 공연을 보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지난 14일 계양구 인천제2시립노인요양병원 1층 로비가 생신축하음악회를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병원 어르신들의 생신축하공연이 있는 날이다.

3급 장애를 가진 최씨는 불편한 몸으로 그가 거주하는 남동구에서 계양구까지 노래 봉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왔다. 의상이 담긴 짐을 챙겨 들고 다니느라 힘은 들지만 자신의 노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가는 무명가수이다. 무대 뒤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꽃단장을 마친 그는 눈부신 조명 빛이 쏟아지는 화려한 무대는 아니어도 자신을 기다리는 관객이 있어서 행복하다. 






병원 로비가 공연무대로 바뀌고 어르신들로 객석이 가득 찼다. 공연 출연자들이 생신케이크에 촛불을 켜면서 잔치는 시작된다.

“많이 기다리셨죠? 다음은 인천이 낳은 인기가수를 소개하겠습니다.”사회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순서를 기다리던 최씨를 멋지게 소개한다.

비록 조명이 하나 없는 무대 아닌 무대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가수지만,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하게 웃음 짓는 관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그가 부르는 흥겨운 노래는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몇 곡의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오고 다음 출연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한미영 사회복지사(인천제2시립노인요양병원)는 “두 달에 한 번 생신잔치 문화 나눔 콘서트를 하고 있어요. 그 때마다 몸이 불편하신데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무료공연을 해주시니까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요. 늘 밝은 얼굴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노래를 부르시니까 다들 즐거워하세요. 이렇게 공연을 통해 아픈 어르신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75년부터 전자오르간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시작했어요. 어릴 적 꿈이 가수였거든요. 그렇게 가수생활을 하다가 94년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2년 동안 병원신세를 지면서 절망에 빠졌지요. 하지만 나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그는 2006년부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노인복지관, 노인요양원, 교도소 등을 찾아다니면서 무료공연을 통해 노래로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시간도 어느새 1,500여 시간이 쌓였다.





“노래 봉사를 다니면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제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을 선사하는 것 같아서 저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끔은 어르신들께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제 손에 쥐어주기도 해요. 거절하면 얼마나 서운해 하시는지...그게 고마움의 표시인가 봐요. 하하~”그는 입었던 무대 의상을 정리하며 말을 잇는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장애인이 되어 처음 공연을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내 노래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장애인이 노래를 한다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마음의 장애가 더 큰 문제인 것을...그래서 그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더 열심히 노래를 불러서 많은 박수를 받았지요... 2011년에 음반을 냈어요. 가수로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1,000장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200장 정도가 남았어요. 이젠 제 노래를 사랑하는 팬들도 많이 생겼답니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그는 부끄러운 듯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살짝 내민다.





노래를 통해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고 요양병원 문을 나서는 그의 웃는 모습이 화려한 무대의상 보다 더 아름답고 환하게 빛난다.


박영희 객원기자 pyh6061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