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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그 섬에선 바람이 길을 안내한다. 소무의도

그 섬에선 바람이 길을 안내한다


다리가 놓여지면 섬은 ‘섬’이 아니다. ‘서다’에서 나온 말이 ‘섬’이기 때문이다. 발걸음이든 자동차든 물 때문에 멈춰서야 그게 섬이다.

무의도는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일컫는다. 이번에 큰 섬과 작은 섬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두 형제 섬은 손을 잡았지만 아직 뭍과 닿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도는 여전히 ‘섬’이다.

글·사진. 유동현_본지 편집장





이젠 두물 건너가는 섬

소연평도, 소청도, 소이작도, 그리고 소무의도. 이들 섬은 억울하다. ‘소(小)’자가 붙었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섬이 작다고 바다의 품도 좁을까. 크기가 작아 ‘소’ 자가 붙었을 뿐 섬이 갖출 ‘스펙’은 다 갖추고 있다. 섬은 작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다. 

소무의도로 가려면 두 물을 건너야 한다. 뭍에서 용유도로 건너 온 후 대무의도를  다시 거쳐야 한다. 불과 8개월 전에는 세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대무의도 광명마을 선착장에서 건너편 500여 미터 떨어진 소무의도 통장에게 ‘콜’을 해야 했다. 잠시 후 통장은 작은 배를 몰고 큰 섬으로 손님 마중을 나왔다. 

멀리뛰기라도 하면 폴짝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두 섬 사이의 바다에 다리가 놓였다. 1년 전 400여 미터짜리 아치형 다리가 놓였다.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인도교다. 그래서 소무위도에서 필요한 물품은 여전히 배를 이용해 옮기거나 오토바이로 다리 위를 달린다.

 






떠밀려 바다에 멈춘 섬

바람은 항상 물보다 먼저 섬으로 들어온다. 다리 위에 올라서니 바람이 먼저 이방인을 맞이한다. 난간에 묶어 놓은 수많은 오색찬란한 만장 깃발이 바람에 춤을 춘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오는 이방객들을 몸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듯 하다. 

바다 위를 산책하듯 다리 위를 느릿느릿 걷다보면 어느새 소무의도. 입구에는 초소 같이 생긴  안내사무소가 있다. 1천원을 내야 한다. 입장료라기 보다는 주민 자치적으로 청소비용 등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손바닥 만한 데 뭘….” 1천원을 내며 섬 한바퀴 도는 시간을 물었더니 어르신 한분이 고개를 빼곰히 내밀며 답해 주신다. 그렇다. 이 섬은 뉘 집 밥 때가 언제인가 훤히 알만큼 작다. 소무의도를 이곳 사람들은 ‘떼무리’라고 하는데 발음상 물에 떠밀려 온 것 같은 느낌을 언뜻 줄 만큼 작은 섬이다. 면적 1.22㎢이고 해안선 길이가 고작 2.5㎞이다.

이 꼬마섬이 전국민의 섬이 된 것은 TV의 힘이 크다. 얼마 전 ‘런닝맨’에 방송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중구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소무의도까지 짜장면을 배달하는 좌충우돌 레이스가 펼쳐졌다. 특별 게스트 박진영과 천정명의 특유의 입담과 재치가 섬 방문의 재미를 더했다.  

지금은 30가구가 살지만 오랫동안 무인도였다. 300여 년 전 박동기씨가 처음 딸 3명과 함께 이 섬으로 들어와 개척한 후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되었다. 현재 당산 서편에는 유씨 시조묘가 남아 있다. 

한때 소무의도 앞바다는 풍어의 바다였다. 6,70년대 까지 서해안에서 겨울철에 그물을 칠 수 있는 유일한 어장이었다. 4㎞로 떨어진 팔미도 앞까지 ‘언들’이라 불리는 새우잡이 그물을 쳤다. 동백화(冬白花)라는 새우떼가 동지를 전후해 10월에서 12월까지 3개월 동안 나타나 하루에 평균 14드럼을 걷어 올렸다. 안강망 어선이 40여척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섬이었다. 파시가 형성되는 어촌에 언제나 전설처럼 떠도는 그 말, ‘개가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처럼 당시 여기 개들도 돈을 물고 다녔다.   

 


  

 

이야기가 널려 있는 섬 

현재 소무의도에는 마을이 2개 있다. 서쪽마을은 무의도와 다리로 이어지고 동쪽마을은 인천 시내와 마주보고 있다. 덕분에 이 섬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장관을 고개 하나를 넘나들며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서쪽에서 동쪽마을까지 넘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분. 

얼마 전 이 섬에 누리길이 만들어졌다. 이전에 길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세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이 섬에서 자기만의 코스로 호젓하게 바닷길, 산길을 누렸다. 

무의바다 누리길은 8구간으로 나뉘었다. 그건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 경관이 뛰어나다. 봉우리에 오르면 서남쪽으로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 북쪽으로는 강화도. 인천국제공항이 동쪽으로는 팔미도. 월미도. 인천대교. 송도국제도시가 보인다. 맑은 날에는 서울 북한산이 보일 정도다. 

누리길을 만들면서 숨겨진 이야기까지 덧입혀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3구간 떼무리길은 소무의도의 자연생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 당산길이 있다. 4구간 부처깨미길 끝에는 만선과 안전을 기원했던 풍어제를 지냈던 절벽이 있다. 이곳을 내려가면 동쪽 마을이 나온다. 갈고리처럼 생긴 해변은 모래 반, 돌 반이다. 몽여해변길이다. 물이 들어오면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다. 

푸짐하게 쌓인 조개들을 밟으며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맨살처럼 보드라운 돌멩이들이 널린 해변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저 ‘큰산너머’라 부른다. 옛날 동네 처녀들이 섬 총각 몰래 밤 목욕을 즐겼을 만큼 깊숙하고 오붓하다. 물이 완전히 빠지면 ‘몽녀’라 불리는 갯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해안을 조금 더 따라 돌면 짧은 백사장이 나온다. 이름하여 ‘명사의 해변’. 명사(名士)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컫는다. 박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고즈넉한 해변이다. 당시 관련자들은 절대 권력자가 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전국을 이잡듯 뒤졌을까. 교통, 풍광, 안전 게다가 경호까지.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해변이다. 

그 앞에는 ‘해녀도’라는 무인도가 있다. 자맥질하는 젊은 해녀의 젖가슴처럼 바다 위에 봉긋 솟은 예쁜 모습이다. 소나무가 빽빽했던 이 섬은 60년대 중반에 큰 수난을 당했다. 연안부두를 축조하기 위한 무분별한 채석 발파로 곳곳이 움푹 패였고 섬의 절반 가까이 깎여나갔다. 그 섬은 한동안 흉물 같은 몰골로 물위에 떠 있었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바람이 쓰다듬어주고 파도가 어루만져 주면서 상처가 완전히 치유돼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스토리를 따라 돌다보면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원위치. 그래봐야 손목시계는 채 작은 바늘 한바퀴도 돌리지 못했다. 바람이 불면 길을 양보하자. 이 섬에 오면 바람만 서둘러 지나갈 뿐 모든 게 한가하고 여유롭다.

 



 

소무의 8경

1경 부처깨미(꾸미)

주민들의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당제를 지냈던 곳

2경 몽여해수욕장

모래와 하얀 굴껍질, 몽돌로 이루어진 250m의 작은 해수욕장

3경 몽여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길목에 하루 두번 드러나는 두 개 바윗돌

4경 명사의 해변

박정희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이 찾아 휴양을 즐겼던 작은 해변

5경 장군 바위

바위가 장군처럼 보여 해적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있는 촛대모양 바위

6경 당산 & 안산

소무의도를 이루는 74m(안산), 30m(당산) 두 봉우리 정상

7경 동쪽마을 & 서쪽마을

소소한 풍경이 아름다운 소무의도의 한적한 어촌마을 풍경

8경 소무도의 인도교

떼무리 선착장과 광명항 선착장을 잇는 타원형 모양의 414m 다리

Tip 무의바다 누리길을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은 공항철도가 운영하는 주말 서해바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서해바다열차는 주말마다 용유 임시역까지 연장 운행한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바로 앞 잠진도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타고 대무의도를 건넌 뒤 마을버스로 광명항까지 간다. 거기서 다리를 건너 소무의도에 들어간다.


자료 : 굿모닝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