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치매할머니를 돌보는 김청자 어르신


김청자 할머니(94세, 연수구연수동)는 오늘도 어제처럼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면 작은 베란다에 올망졸망 놓여 있는 화초들과 아침인사를 나누고 외출준비를 한다.

몸이 아파서 누워있지 않는 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려도 하루도 빠짐없이 꼭 가는 곳이 있다.


“꼭 다녀와야 내 마음이 편해져요!”

5,6년 전부터 열심히 다닌 그곳은 교회도 아니고 성당도 아니고 절도 아니다. 시영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된 노씨(87세)할머니 집이다.

오래 전부터 이미 치매를 앓고 있는 노할머니는 김할머니가 어제 온 것조차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상실된 상태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가 6년쯤 되었어요. 우연히 동생을 알게 되었는데 치매를 앓아서인지 친구도 하나 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데 불쌍하더라고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동생이 건강하면 좋은데...내가 이렇게 매일와도 기억을 잘 못해요...그래도 밤새 잘 잤는지 얼굴을 보고 와야 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김할머니는 노할머니를 처음 만난 그날부터 동생처럼 생각하고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다.





젊은 새댁시절 자식을 낳지 못해 갖은 구박과 눈칫밥을 먹으며 소박맞고 쫓겨났다는 김할머니.

“맨몸으로 나와서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돈도 없고 마땅하게 지낼 곳도 없어서 식모살이를 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어요.”

“자식 없이 혼자 살면서 고생 참 많이 했지...참 힘들고 서럽게 살았어...”

“내가 힘들게 살아서인지 몰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꼭 도와주고 싶어..도와주고나면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해!”





지난 11일 오전. 이날은 연수시영아파트 승강기점검이 있는 날이다.

9층에 거주하고 있는 김할머니는 노할머니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계단으로 가야겠네...”

승강기 점검이 끝나고 운행이 원활할 때 가시라는 사회복지사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승강기가 말을 안 듣는 날은 늘 그랬듯이 익숙하게 비상계단으로 방향을 돌려 발길을 재촉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1층을 향해 내려간다. 

노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행복하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는 노할머니도 9층에 거주한다.

비상계단을 청소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김할머니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 오늘은 가지마세요! 어떻게 9층까지 올라가시려고요. 힘드셔서 안돼요!”

김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가봐야 돼요. 나를 기다릴지도 몰라...11시 30분에 복지관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 먹어야해!” 김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면서 계단을 향해 9층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노할머니 집에는 연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원해준 가정관리사가 집안일을 하며 언제나 그렇듯이 김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한다.

김이숙씨(59세, 가정관리사)는 “어르신을 계속 지켜봤거든요. 마음이 참 아름답고 고우세요. 섬김을 받아야할 연세인데 주변 사람들을 먼저 챙기시지요. 오늘은 승강기 운행을 하지 않아서 못 오시나보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오시니까 감동이네요. 나도 나이를 먹으면 어르신처럼 마음으로라도 따뜻하게 베풀며 살아야겠어요.”





김할머니는 노할머니를 보자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얼굴을 쓰다듬는다.

노할머니는 해맑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내일이면 오늘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예뻐보이네~! 벌써 11시가 넘었어...얼른 복지관으로 밥 먹으러 가자...”

아파트 스피커에서 승강기 점검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유~잘 됐다. 우리 동생 힘들게 걸어가지 않아도 되겠네!” 김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두 어르신은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내가 사는 날까지 돌봐주고 싶어요. 나를 기억 못해도 섭섭하지 않아요. 내가 가진 게 없어도 이렇게 마음으로라도 베풀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지요. 구십 넘게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복지관 식당으로 향하는 김할머니의 천사같은 미소와 발걸음에 행복이 피어난다.





"김청자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 먼저 손을 내미시고 챙겨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제가 많이 배워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윤예랑 복지사(연수종합사회복지관)는 흐뭇한 미소로 두 어르신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박영희 객원기자 pyh606101@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