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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닥종이 인형 김영애 작가


천년 한지에 포개진 우리의 자화상

닥종이 인형 김영애 작가


‘한지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의 한지는 질기고 튼실하다. 한지는 흔히 '닥종이'로 불리기도 한다.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쓰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부드럽지만 질긴 이 한지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생활에 요긴한 물건 뿐 아니라 공예품으로도 활용했다. 그것을 되살려낸 것이 한지공예다. 닥종이 인형은 그 중 한 분야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납작한 코, 해맑게 웃는 입. 우리나라 전통 한지가 한 겹 한 겹 쌓여서 만들어낸 표정이다. 닥종이 인형은 순박한 동심의 표정으로 완성된다. 거친 듯, 한 올 한 올 올라선 한지의 가녀린 실밥들이 투박하다. 우리 고유의 한지로 만든 닥종이 인형은 작가의 마음이 담기면서 새 숨을 얻는다. 김영애 작가는 손끝으로 한지를 살살 찢어 붙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연수구 소재 그녀의 공방에 이야기가 소곤소곤 오간다. 다양한 표정과 다채로운 의상으로 완성된 닥종이 인형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소원을 비는 아낙들과 함께 모여 떡을 빚는 가족들, 골프 치는 할아버지와 제기 차기에 푹~ 빠진 아이들. 서로를 아끼는 의좋은 형제와 밥 동냥을 나서도 기분 좋은 걸인, 궁궐에서 칼춤 추는 무희…. 갖가지 표정과 포즈를 취한 수많은 작품들이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온갖 군상(群像)들이 모여 사는 또 다른 세상이다. 그 중 조용히 구석에서 겨자색 한복 치마를 입고 가방을 든 고운 여인이 웃으며 나들이 길에 나선다.





“저 아주머니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김영애 작가가 묻는다. 색상이 튀지도 않고 차분한 차림으로 보아 부잣집 안주인 같아 보인다. 답변을 머뭇거리자 그는 전시회 당시를 회상한다. 

“관객들이 이 아주머니를 보며 말을 하더군요. ‘표정은 웃고 있지만 팥쥐 아주머니 같다’ ‘잘살지 못하는 아주머니가 며느리에게 힘든 집안일을 시켜놓고 외출하는 것 같아’ 등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 놓더군요 ”

그가 ‘외출하는 아주머니’ 작품을 만들 땐 화창한 날 정말 기분 좋게 외출하는 여인을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다른 관객들의 반응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을 만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어요.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이 이 아주머니 얼굴에 담긴 거죠.”

닥종이 인형에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날 그날 작가의 마음과 표정이 한 겹 한 겹 올려붙이는 한지 위로 표현된다. 닥종이 인형의 표정에서 그의 마음날씨가 예보되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한지는 자유롭다. 그녀의 손에서 삼라만상이 창조된다. 온갖 동물들은 물론 연꽃잎을 모아 놓은 듯한 조명 갓도 만들어진다. 무와 파 등 김치를 만드는 재료, 항아리와 호박 모양 함지와 보석함 등 그의 손에 닿은 한지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가 닥종이 인형과 인연을 맺은 지 꼭 14년째다. 닥종이 인형과 함께 밤을 하얗게 센 날도 부지기수다. 그는 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과 인천미술협회회원으로 전국을 누비며 닥종이 인형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개인전 3회와 회원전 50여회를 열며 소품에서 대작까지 1,000여점이 넘는 작품을 완성했다. 현재 제주도와 강원도 원주 등 여러 지역 박물관과 테마파크에 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공방 한 켠, 김장하는 전 과정이 담긴 인형과 소품들이 포장돼 박스에 담겼다. 곧 미국 뉴욕의 한인식당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동포들은 닥종이 인형을 보며 고국의 향수를 달랠 것이다.





닥종이 인형은 수백 수천 겹으로 이어져 때론 가볍게, 때론 거칠게 한지 특유의 질감으로 표현된다. 작품을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 머리와 몸통을 만들어 살을 붙이고 얼굴에 표정을 담고 옷을 입히는 과정까지 12단계를 거친다. 한지를 붙이고 말리기를 반복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에 따라 표정과 머리 모양, 옷이 바뀐다. 그는 순간순간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형의 완성도를 높인다.





“옷을 만들어 입힐 때도 신경을 많이 써요. 배색은 물론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500개 작품을 만들어야 표정을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 포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살아있는 듯한 표정이 닥종이 인형의 포인트다. 그래야 인형에 숨결이 들어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닥종이 인형이요? 나의 인생입니다. 하면 할수록 닥종이 인형은 제 분신 같아요.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 정말 매력이 있지요.” 





김민영 객원기자 gem0701@hanmail.net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