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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그 엄마에게는 휴무가 없다. 국무총리표창 장순란 신명보육원 팀장

그 ‘엄마’에게는 휴무가 없다  

국무총리표창 장순란 신명보육원 팀장 


낳은 자식과 기르는 자식이 있다. 장순란 (58세)씨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을 양육하는 ‘처녀 엄마’이다. 90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보건복지부에서는 아동복지분야에 공이 큰 유공자 176명을 선정하고 훈장과 포장 등 정부포상을 수여했다. 이들은 모두 조용하고 꾸준히 아이들의 조력자로써의 정성을 쏟아 온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신명보육원 생활지원팀장 장순란 씨가 있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그녀는 양육담당 생활지도원으로 30년째 신명보육원에서 아이들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고 있다. 보육원 301호. 그녀와 아이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룹홈’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중학생 1명과 고등학교 2학년 3명, 고등학교 3학년 5명 모두 9명의 여학생들이 그녀와 함께 일상을 만든다.


그녀가 배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그리고 다 마른 옷가지와 수건을 차곡차곡 정돈한다. 여느 가정집 주부의 모습이다. 수줍게 웃는 장순란 팀장. 그녀에게 물었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신 소감이 어떠세요?”

“농담으로 그랬어요. 대통령상 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일을 계속 하겠다고”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미스’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명보육원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덧 30년째다. 그녀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자립한 아이들은 모두 80여명이 넘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립을 해야 해요. 자립금 500만원이 지급되지만 그걸로 방을 얻기는 어렵죠. 안타깝죠...”


그녀는 5분 거리에 거주지를 두고 있다. 그녀의 안식처는 자립한 아이들이 변변한 거처를 얻을 때까지 안정을 취하는 곳이 되었다. 자신의 거처도 기꺼이 내준 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좀 더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고 있다. 주소지를 그곳에 두고 있는 아이도 있고 평균 1~2명은 항상 그녀의 거주지에서 생활을 한다.

“불편하지 않아요. 어차피 저는 휴무일인 이틀만 집으로 가니까요.” 

그녀는 일주일에 5일은 그룹홈에서 아이들과 함께 낮과 밤을 보내고 2일은 휴무다. 그 휴무마저 아이들과 지낸다. 엄마에게 휴무가 없듯 그 엄마에게도 휴무가 없다.






“다녀왔습니다...” 김민정(가명· 고3)양이 인사를 하고 들어온다. 귀여운 얼굴에 웃음이 많고 상냥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이내 거실로 나와 옷 정리를 돕는다. 초등학생 때 이곳에 입소하고 그녀와 한 식구가 된 지 3년째다. 

“선생님이요~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 주시고 잘 챙겨주세요...” 그리고 웃는다. 수건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어 오면서 김 양의 미소는 변하지 않고 해맑다. 

“야단맞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 괜찮아요. 히히...”

일산 킨텍스로 소풍을 다녀온 정미희(가명· 고 3)양도 귀가를 한다. 정 양은 일산에서 사 온 소품들을 가방에서 꺼내어 놓으며 정리를 한다. 정 양은 이곳에 생활한지 2년째다.





잠시 지켜보던 장 팀장은 미소 짓는다. “미희는 영어와 중국어를 잘해요. 관광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해요.” 

정 양도 웃는다. “네, 전 관광 쪽의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취업 후 관광관련 공부를 더할 계획이에요.” 정양의 방 유리창에는 중국어가 빼곡히 적혀 세상의 풍경과 함께한다.





장 팀장의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이 사회로 자립해서 적응 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한 친구는 누구나 다 있는 엄마가 없다는 것을 힘들어했어요. 그 때 그랬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누구나 혼자다. 너만 엄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일찍 상황이 왔을 뿐이다. 스스로 극복을 해야 해. 그 이후 그 아이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했어요.” 

그녀의 말이 계속된다. “또 한 친구는 너무 속을 썩여서 제가 많이 속상했어요. 야단을 치기도 했죠. 그런데 그때 말썽을 부리던 아이들도 퇴소와 자립 후 찾아와 그 때를 감사했어요. ‘좀 더 때려주지 그러셨어요.’ 라고 해요.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을 길을 찾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아이들과 함께여서 행복한 그녀가 요즘은 고민이 있다. “요즘은 생각이 많아졌어요. 아이들이 옛날 같지 않게 자기주장도 강해서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요.”라며 그녀는 말을 잇는다. “이곳에 있는 친구들은 편모와 편부,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의 이혼 등의 사유로 있어요. 아이가 부모님들을 오가며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지도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아요. 교육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싸울 수는 있다. 그러나 관계개선을 위해 사과는 꼭 해야 한다. 일을 피하지 말고 내가 좀 더 한다는 생각으로 성실해야 한다. ‘화목한 자가 복되다’는 신앙심을 전하고 있다. 아이들과 늘 좋은 관계로만 지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서로를 이해하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그녀는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신앙심이라 강조한다.


그녀에게 희망이 있다. 정년 65세까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과 정년 후에는 원하는 아이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정착하는 것이다. 결국 영원한 엄마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사회로 나가 정착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잠시라도 쉬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민영 객원기자 gem0701@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