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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이발사 인생 53년 된 이발소, 운연 이발관과 신광 이발소

45년 이발사 인생, 53년 된 이발소 

운연 이발관과 신광 이발소 


세월의 흐름은 새로운 업종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호황이었던 업종을 불황으로 만들기도 한다. 여자들은 미용실, 남자들은 이발소를 이용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미용실에 많은 손님을 빼앗긴 이발소들 역시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50여 년 된 동네 이발소를 지키며 살아가는 40여 년 경력의 이발사 두 분을 만나봤다. 


운연동 운연 이발관

한 때는 ‘너무나 잘 나가서’ 번호표까지 뽑아 대기할 정도로 호황이었던 이발관이 있었다. 하지만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곳을 찾는 사람은 일 년에 채 한 두 명도 되지 않는다. 급격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운연 이발관이다.  





굴뚝이 있는 가정집에 노란색 이발관 간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발관을 상징하는 삼색등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색이 바란 채 멈춰있다. 미용실에 밀려 도심에 있는 이발소도 영업이 힘든 요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옛날식 이발관을 찾는 이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운연 이발관의 주인 이종구 할아버지는 올해로 78세이다. 45년 전 인천시가 경기도에 편입되어 있던 시절에 경기도지사로부터 이용사면허증을 따고 이발사가 되었다. 그 후 1970년에 처음으로 본인 명의로 이발소를 냈다. 

당시에는 도장을 찍은 대기표를 만들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이용협회에서 표창장도 숱하게 받았다. 오래된 표창장들은 지금도 액자에 담겨 이발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표창장 사이에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받은 위촉장과 감사패도 많다. 

“젊었을 때, 이발소가 잘 될 때는 밖에 나가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그래서 상도 많이 받았지. 교통정리 봉사도 하고 이발 봉사도 하고 그 때는 활동을 참 많이 했어요.” 손님이 없어 한가한 지금 이종구 할아버지는 바빴던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한 평 남짓한 좁은 이발관. 이곳은 원래 살림집 주방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손님용 의자는 단 하나. 머리를 감을 장소도 마땅하지 않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명절 때 찾아오는 손님들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뿐이다. 

“작년부터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일 년에 한두 명도 힘들어. 그냥 명절에 손자들 머리 잘라주고 한 달에 한 번 집사람 머리 염색해주고, 내 머리 자르는 게 다야. 이젠 조합에서 조합비 받기 미안하다며 안 받더라고. 폐업 신고를 따로 해야 되나 싶네.” 아쉽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이종구 할아버지는 “40년 넘게 했으면 오래 했지. 이젠 눈도 침침하고 그만 할 때도 됐어.”라고 말하며 세월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용현동 신광 이발소

마찬가지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이발소가 용현동에도 있다. 이곳은 운연 이발관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예닐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왔던 손님이 올해로 환갑이 되었다고 하니 한 자리에서 옛 모습 그대로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보낸 것이다.  





신광 이발소 이원호 사장은 93년에 이곳으로 이사해 20년 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방에서 인천으로 올라와 여기서 영업을 시작했어요. 창문이 하도 낡아서 그거 하나 고쳤고 나머지는 옛날 그대로에요. 원래 이 동네가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이 된다고 했었거든요.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모르니 집주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손대기가 뭣하더라고요. 그래도 손님들이 찾아주시니 그저 고맙지요” 


신광 이발소는 그래도 아직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다. 문 앞에 있던 철길이 7년 전 공원으로 조성되며 주차하기가 편리해졌고 또 20년 동안 한결같은 친절함이 단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손님의 90% 정도가 40대 이상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손님 뿐 아니라 이용사도 젊은 사람은 거의 없어. 조금만 더 지나면 아마 이발소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나야 이 기술로 자식들 다 키웠고 정년퇴직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 참 고마운 일이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기도 하죠.” 

이용사협회 인천남구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원호 사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 남구에는 200여 명의 이용사들만이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입 후배들의 영입 없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드는 이용사 숫자를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한다. 





예전에 비해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먼 길을 마다않고 꼭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있어 이원호 사장은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70세의 조정신 할아버지도 신광 이발소의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조정신 할아버지의 집은 용현동에서는 다소 먼 대청도이다. 왜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느냐는 질문에 조정신 할아버지는 “인천 나올 일 있으면 여기 와서 이발을 꼭 하고 가지. 여기서 면도를 하면 아주 시원하고 깔끔하거든. 그리고 지금은 대청도에 이발소가 하나도 없어요. 얼마 전까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문을 닫았거든”하고 말씀하셨다. 





운연 이발관의 이종구 사장님은 이발사 일을 하면서 슬하의 4남 1녀를 키워냈다. 지금은 이발소 영업으로 이윤을 낼 수 없어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신다. 함께 모시고 살겠다는 아들들이 있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한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아 오늘도 운연 이발관을 지키고 계시다. 

신광 이발소의 이원호 사장 역시 19세 때 배운 이용 기술로 평생을 살아왔다. 1남 1녀의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켰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하셨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옛 일터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 아버지들의 청춘이 자식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수경 객원기자 with0610@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