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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시인, 면발을 뽑다! 강원도 맛 전도사 홍장표 시인

시인, 면발을 뽑다! 

강원도 맛 전도사 홍장표 시인 


신경림 시인은 “시인도 직업을 가져야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좋은 시란 사람들과 함께 뒹굴고, 함께 땀을 흘리는 가운데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계양구 갈현동에서 만난 시인 홍장표씨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시인이다. 그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달콤 쌉싸름한 세상사 이야기는 시로 만들어진다.






어머님의 손맛, 아들이 재현하다

홍장표시인은 막국수 쥔장이다. 주방에서 만난 그는 영락없는 요리사였다. 그런 그가 박목월 시인에게서 시를 사사했단다. 시어를 뽑아내는 시인의 손으로 뽑아낸 국수의 맛은 어떨까? 시를 사랑하던 그가 음식점을 차리게 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한때 시인으로서 출세를 꿈꿨죠. 그러나 시를 써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더군요.” 홍장표 시인이 펜 대신 면발 뽑는 기계를 쥐게 된 계기다.





홍장표시인의 어머님은 강릉에서 막국수집을 36년간 운영하셨다. 어머니는 시를 쓰는 큰아들이 항상 못 미더웠다. 장손으로서 가업을 잇길 권유하였던 어머니. “제가 젊었을 땐 어머니의 권유가 야속하더라구요.” 영세한 막국수집의 대를 잇는다는 것은 홍시인에겐 자존심을 버리라는 소리로 들렸단다. 





“어머니도 늙어 가시고 저도 철이 들자 영세한 토속 음식점을 변모시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천에 터를 잡은 홍시인은 토속 음식점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로 컨셉을 잡았다. 그때부터 옛날 농기구며 항아리 등을 하나하나 모아 마당을 꾸몄다.

“프랑스와 일본을 여행했는데, 3대~4대가 민속적인 음식점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기술을 전수 받았듯 제 아들에게도 가업으로 이어줄 겁니다.”

홍장표시인은 강원도보다 더 강원도적인 음식을 만들고 있다. 강릉서 공수해오는 고춧가루, 깨, 김 등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가 모두 강원도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에서 온 손님 김영수씨는 “강원도에서도 이 맛이 안 나더라구요. 막국수 맛이 끝내줘요.”라며 엄지손을 치켜 세웠다.






마당 깊은 집, 손수 정원을 꾸미다

‘동해막국수’집은 마당이 깊다. 넓은 정원은 오래된 소나무와 갖가지 예술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글씨를 쓰고 홍장표 시인의 시로 담을 대신한다. 친구사이라는 50대 여자손님 둘은 무쇠솥단지 뚜껑을 열다가 소녀 같은 웃음을 짓는다. “아이고, 우리 신랑도 안해주는 말을 주인이 해주시네.” 그녀가 열었던 솥 안에는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써있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 것을 지키려는 시인의 마음이 800여개의 작품에 깃들여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먹었던 음식, 성장하면서 어머님이 해 주시던 강원도 음식을 통해 나의 고향 강원도를 알리고 싶습니다. 음식도 예술 작품이라는 긍지를 갖고 열정적으로 사업을 할 예정입니다.”

홍시인은 올 하반기에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며 네 번째 시화전을 이곳에서 열 예정이다. 





메밀을 주원료로 하는 ‘홍장표 동해막국수’의 메뉴는 막국수와 메밀부침, 수육이다. 가까운 근교로 바람 쐬는 기분으로 시인이 뽑는 면발을 먹으러 가보자. 강원도의 힘이 느껴질 것이다.    


메밀꽃 필 때

                                               - 홍장표


메밀꽃 하얗게 들판에 피고

햇빛이 소나무를 한참 그늘 지울 때

문득 친구가 보고 싶고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


아주 오랜 어린 시절

어머니는 눈물 훔치시며

얻어온 보리쌀 몇 되


막국수 한그릇 시원하게 먹고

이곳에서 잠시 쉬엄쉬엄 머물다 가야지

세상살이 더러는 힘들었고

때로는 울부짖는 몸부림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넋두리는 이집에 오래 머물고

몇 마리 산새는 저만큼 허공으로 멀어지는데

나와 함께 저 나그네도 

막국수 한 그릇에 인생을 탓하려든다. 


이현주 객원기자 o7004@naver.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