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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숨은 실력파, 그들이 인천을 노래한다 '필그림 앙상블'

숨은 실력파, 그들이 인천을 노래한다 

'필그림 앙상블' 


인천을 의미하는 것들이 있다. 시목(市木)은 목백합, 시화(市花)는 장미, 시조(市鳥)는 두루미, 백령도의 물범은 2014 아시안게임을 상징한다. 인천을 상징하는 노래도 있다. 1955년에 만들어진 ‘인천 시민의 노래’이다. 더불어 2014 아시안게임 유치기념으로 만들어진 ‘미래도시 인천의 노래’도 있다.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인천의 힘이 담긴 노래.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필그림 앙상블’이다. 세계의 무대에서 한국을 빛내고 인천을 알리는 사람들이다.





봄바람에 이끌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한 월미전통공원 ‘제물포 마당’에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인천... 미래 도시 인천....’ 나들이객들을 향해 인천을 노래한다. 신나고 유쾌하게 인천을 알리는 이들은 4인조 ‘필그림 앙상블’ 이였다. 음악으로 시민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이들을 더 가까이 깊이 만나보고 싶었다.


남구 주안동 소재의 ‘필그림 앙상블’의 연습실을 찾았다. 제대로 된 녹음실과 연습실을 갖추고 다양한 악기들이 손 타기를 기다린다. 김종문(49세) 단장과 바이올린 김신영(52세)씨, 첼로 이윤정(30세) 씨와 싱어 김혜인(23세) 씨가 밝은 미소로 맞이한다.  







이들은 우리의 발길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음악으로 행복을 전하고 세계 각국의 무대를 오르내리는 ‘실력파’다. 아름다운 태안 실리기 ‘사랑 海 콘서트’ 등 국내의 굵직굵직한 무대를 비롯해 문턱 높기로 소문난 ’뉴욕 카네기 홀‘에서도 공연을 했다. 

미주 대륙횡단 콘서트와 캐나다 밴쿠버를 비롯해 태국, 중국, 미얀마, 필리핀 등 순회공연 그리고 이라크 자이툰부대 위문공연을 다녀왔다. 이들의 여권은 바쁜 스케줄과 경력만큼 묵직하다. 

김종문 단장의 작곡· 편곡 실력은 다양한 축제와 전야제에서도 빛났다. ‘2002 FIFA 월드컵’ 전야제 음악 작곡에 이어 ‘2002 부산아시안게임’ 개막식 음악 작곡, ‘99 강원도 평창 동계 아시안게임, ‘99 인천전국체전’의 음악도 그의 손에서 완성됐다.

화려한 경력의 ‘필그림 앙상블’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움직이며 노래와 음악으로 세상을 밝히고 인천과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었다. 





“1991년 팀이 결성되고 22년째 됐어요.” 바이올린 김신영 씨가 말문을 연다. 20여 년 전 sbs 관현악단 단이었던 그녀가 처음 팀을 결성했다. “유학을 준비했는데 그만 결핵에 결렸죠.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음악봉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봉사 오기를 만료했어요. 면역력이 없는 저를 배려했죠. 하지만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투정부리듯 기도를 했고 나중에 깨달았죠. ‘그래도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요. 결핵이 완치되고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사람들이 찾아가지 못하는 두메산골과 같은 곳으로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우리 팀의 모태가 됐어요.” 유쾌한 그녀가 ‘필그림 앙상블’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리고 2001년도 김종문 단장이 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은 없었다. 행복을 전하겠다는 마음 위에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기나 긴 봉사로 깨달았다. 

“음악은 감동이어야 합니다. 내가 깨지는 트레이닝을  5년 정도 받고 나니 겸손해지고 실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 다져졌어요. 우리 팀 모두 그렇지요. 그 시간들로 인해 무대 위에서 실력으로 자유로워졌어요. 김 단장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라며 유쾌한 그녀가 웃는다.





김 단장의 손은 바쁘다. 악보에 작곡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인천 토박이로 어린 시절 수봉산 자락에서 추억을 쌓았던 그는 인천을 알리는 일이 즐겁다. “ 99년 강원도 평창동계아시안게임 음악을 마무리 지을 쯤 ‘99 인천전국체전’ 개막식 음악을 공모한다는 것을 봤어요. 보는 순간 ’당연히 내가 할 일이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2007년 ’2014 아시안게임 유치 기념 인천의 노래 공모에도 도전했는데 선정이 됐어요.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노래인데 홍보가 잘 되지 않아 조금은 속이 상합니다.”라며, “그 이후로 계속해서 각종 체전과 행사 음악을 만들고 있네요. 어쩌다 보니 그 쪽 방향으로 전문이 됐어요.” 그가 시원하게 웃는다. 무대 위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김 단장은 드럼과 베이스 기타도 수준급이다. 김 단장이 귀띔한다. “보컬 코러스도 맡고 있어요...하하...”





그녀의 키만큼 높은 첼로를 손에서 놓지 않는 첼리스트 이윤정 씨가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2003년부터 팀에 합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카네기홀 공연을 꼽는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만 선다는 곳에서 공연을 하러 그곳에 도착했을 때와 공연을 마치고 나니 너무나 감격이었어요. 나 혼자였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텐데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들과 한팀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순간이에요.” 그녀가 가장 힘든 일은 체력적인 문제라고 한다. 

“연 200회 가까운 공연을 전국으로, 세계로 다니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육체적으로 버거울 때도 있어요. 무엇보다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죠. 선생님들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정말 많이 속상해요. 그래서 더 노력해요.” 





마이크 앞에 선 싱어 김혜인 씨는 팀의 막내다. 실용음악과를 휴학하고 2009년부터 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김 단장의 딸이다. 음악으로 아버지와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빠와 함께라 공연을 다닐 때 위안이 되고 편해요.”라며 “연습할 때는 아빠가 아닌 단장님으로 저를 엄격히 대하세요. 서운할 때도 있지만 모두 절 위한 것이니 감사하죠. 저 같은 애송이를 단원으로 받아들여 기회를 주고 함께 참여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과분한 일입니다.”


미소가 많은 이들은 이 연습실에서 무수히 많은 시간을 악기와 함께하며 계속해서 실력 쌓기를 한다. 멈추지 않는 이들의 연습은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바이올린 김신영 씨는 “나만 기쁘지 않고 그들을 기쁘게 하면 다같이 행복해 지는 것을 확인했어요. 정말 음악이 뭔지 모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음악을 듣는 구나’ 하는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라고 얘기한다. 

20여년 팀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팀 결속력이 좋은 이유는 분명하다. 

“좋은 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함께하고 있기에 즐겁게 하죠. 또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지금껏 우리를 있게 한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는 그것이 다른 어는 것 보다 큰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면 ‘그럼 됐어!!!’ 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가 연습실에 퍼진다.





실력과 경력에 비해 ‘필그림 앙상블’의 인지도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싱어 김 혜인 씨가 궁금증을 한 방에 날린다. “우리 팀은 유명해지려고 활동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아요. 소외된 곳에 음악으로 희망을 주고 함께하려는 팀이라 그것이 서운하지도 않아요.”





다재다능하고 겸손한 실력파로 구성된 ‘필그림 앙상블’은 비영리단체로 등록됐다. 지난 3월에는 남구의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됐다.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인천을 알리는 이들은 연주를 하는 각 팀의 구성원에 맞게 맞춤형 악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인천의 노래는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서 악보를 볼 수 있다.






김민영 객원기자 gem0701@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