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됐어요
무료로 가훈 써 주는 김세준 할아버지
흔히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한다. 남을 도우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욱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삶의 커다란 축복이다. 특히 본인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될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던 처지였다면 본인의 달라진 상황은 큰 기쁨이 된다고 한다. 무료로 가훈을 써 주고 있는 김세준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까지 사회의 도움 없이 생활하기 힘들었던 할아버지가 이제는 매일 남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며 행복을 되찾았다.
“무료로 가훈을 써 드립니다.”
미추홀사회복지관 입구에는 안내판 옆에 붓글씨가 한가득 놓여있다. 그리고 그 위로 ‘가훈을 무료로 써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안내데스크에는 큰 벼루와 붓이 놓여있고 팔순을 넘긴 김세준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좋은 글귀들을 쓰고 있다. 오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무료로 가훈을 써 주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지. 아내 먼저 보내고 자식들 출가하고 혼자 살면서 많이 외로웠는데, 여기 나와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좋아요.” 김세준 할아버지는 무료로 가훈을 써 주는 일이 마냥 행복하다고 한다. 큰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비용은 모두 개인 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그 금액을 아깝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김 할아버지가 도움을 주면서 느끼는 행복을 찾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술을 심하게 먹어서 가족들이 외면하고 포기하기도 했었단다. 그러다 미추홀사회복지관과 인연이 닿았고 처음에는 그저 무료급식을 드시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기위해 복지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활의지를 갖고 금주를 시작했고 복지관의 서예교실에 다니다 무료로 가훈을 써 주는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후 사회에 보답할 길 찾아
전쟁을 경험한 어르신들의 삶이 그렇듯 김세준 할아버지 역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0대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해 호되게 전쟁을 치렀다. 평안북도에서 중공군과 싸우다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총알이 다리를 관통하고 파편이 배에 박히는 등 부상이 심했다. 그때의 부상으로 지금도 몸이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본인이 국가유공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고, 10년 전 쯤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려니 노인 혼자 준비하기에는 필요한 서류도 많고 절차도 복잡했다. 몇 해 동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김세준 할아버지는 2007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유공자가 되고 나니 어려운 경제사정도 해결되고 마음껏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유공자로 인정받고 나서 완전히 달라졌지. 연금도 나오고 병원 치료도 공짜로 받고 국가에서 일주일에 2번씩 가사도우미도 보내주고 있어요. 밥 해 먹는 거, 청소하는 거, 빨래하는 거 걱정도 없고 너무 고맙지. 그런데 그렇게 받기만 하는 게 여간 미안하지 않더라고.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을 하다 이 일을 하게 됐어요.” 김세준 할아버지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면서도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9시면 즐거운 마음으로 복지관을 찾는다. 치료를 받으러 가는 금요일 오후를 제외하고는 몇 년째 지각 한 번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봐 온 김수희 사회복지사는 “혹시나 사정이 생기실 때는 항상 미리 알려주세요. 편찮으시거나 갑자기 일이 생기시면 전화를 주시고요. 가훈 써 드리는 게 시급한 일은 아니니까 여유 있게 하셔도 될 텐데 언제나 성심성의껏 열심히 해 주셔서 저희들도 어르신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며 팔순 어르신의 성실함에 복지관 전체가 활기를 띤다고 말했다.
김세준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쓴 붓글씨를 받고 싶다면 미추홀사회복지관(☏876-8181)을 찾으면 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금요일에는 정오까지 일을 하신다. 가정의 달, 5월에는 복지관에서 마련한 각종 행사에도 참석해 더 많은 시민들에게 가정에 행복을 선사할 가훈을 직접 써 줄 계획이다.
유수경 객원기자 with0610@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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