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못 고치는 차는 없다
대한민국 자동차명장 1호 박병일씨
도로마다 수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들. 누가 뭐래도 생활수단으로 자리 잡은 자동차. 하지만 그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중학시절 독학으로 자동차 정비세계에 발을 들여 대한민국자동차 명장 1호에 빛나는 박병일 씨의 자동차 인생이야기다.
30만 명을 가르치는 자동차 명장
박병일(55)씨는 남동구 고잔동에서 자동차 정비업체 카123텍을 운영한다. 정비업체들은 많지만 그의 일터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이유는 좀 다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명장 1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을 잊을 수 없어요. 한국 최초로 자동차명장에 올랐기 때문이죠. 당시 세계 최초로 자동차 급발진에 관한 분석을 한 공이 컸어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자동차 명장이 모두 3명예요.”
박 대표를 칭하는 명장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 명장은 기능계의 최고 실력 기능장과 기술계의 같은 레벨인 기술사를 합친 개념이다. 마치 예술세계의 인간문화재 격이다. 따라서 자동차 명장이란 차에 대한 기능과 기술의 최고봉인 셈이다.
그는 자동차명장 외에도 전기와 엔진 분야의 자격증만 16개를 갖고 있다.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자격에 등극하면서 그로부터 교육받은 인원만 해도 무려 30만 명이 넘는다고. 그는 어떻게 자동차 정비 최고봉에 올랐을까.
중학중퇴 후 독학으로 명장까지
박 대표의 자동차명장 타이틀 뒤에는 이른바 산전수전의 피나는 인생이 숨어있다. 가난한 8남매 집안의 맏이역할은 힘들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유년시절. 학교를 떠나 자동차 정비공장 견습공 시절은 명장으로 향하는 입문이었을까.
“당시만 해도 정비바닥 정서는 '공구는 빌려줘도 기술은 빌려주지 마라' 식이었어요. 그 탓에 기술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죠. 헌책방에 나가 ‘자동차백과사전’을 사다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기술을 알아야만 견습공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독학의 길은 험난하고 혹독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자동차 원리를 알아가는 기쁨은 그의 투지를 부채질했다. 77년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 획득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 까지 현장과 공부는 그의 일과 자체였다.
그는 인천기능대학에서 공부하며 전문성을 다졌다. 그 결과 그 동안 출간한 자동차 전문서적만도 37권을 넘는다. 현재는 정비기술교육 외에도 인천은 물론 전국의 특성화고교에 나가 직업과 진로교육에도 나선다.
척 보면 탁 아는 기술인생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교육생들 앞에 설 때 가장 신난다. 자동차 정비 실습교육은 자부심이자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술은 폐차선고 받은 차도 부품 몇 개를 교환해 새 생명을 불어넣을 정도다.
“입고된 차량의 보닛을 열면 한 눈에 보여요. 엔진 주변이 마모된 것은 엔진오일을 교환하지 않고 1만km 이상 달렸기 때문이죠. 이렇게 하면 기계장치에 오일 순환이 안되요. 엔진을 통째로 갈아야죠.”
그의 자동차 진단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동차 교육은 이론중심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의 교육은 철저히 현장실습 위주다. 교육과 정비공장일로 바쁜 그지만 그에게는 남은 보람과 꿈도 아직 더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자동차를 비롯해 제과·제빵, 미장, 보일러 등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요. 인천의 약 49개 섬을 돌며 봉사를 해요. 뭐든지 제대로 잘 할 수 있는 손들이니까요. 향후 인천에 기능인들의 집합소인 기능회관을 만들어 일자리 산실 역할을 하는 게 남은 꿈입니다.”(☎032-821-7179)
김정미 객원기자 jacall3@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통하는 인천 > 인천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볶이 장인을 꿈꾸는 매콤 쌉쌀한 인생 이야기 (1) | 2012.05.14 |
---|---|
난민과 빈민을 품어 준 수도국산 (0) | 2012.05.09 |
무료로 가훈 써 주는 김세준 할아버지 (0) | 2012.04.27 |
숨은 실력파, 그들이 인천을 노래한다 '필그림 앙상블' (0) | 2012.04.26 |
13년째 월미도 문화의 거리 배경으로 찍다 (0) | 2012.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