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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팸투어, 강화도를 공부하면 우리 역사가 보여요.




하반기 팸투어, 강화도를 공부하면 우리 역사가 보여요.

한 눈에 보는 한반도의 역사! 강화역사박물관, 고인돌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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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함께 블로그기자단이 전해드릴 소식은 인천의 자랑! '강화도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강화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강화도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요? 고려시대의 수도?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섬?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에 드는 큰 섬? 여러 이미지가 떠오르실텐데요.


 

▲ 강화역사박물관 내 고인돌 모형



이번에 저희가 준비한 소식은 바로 '강화도 역사여행'입니다. 사회적으로 한국사를 필수교양으로 인정하고 있고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강화도는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강화도는 개국시원부터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 근, 현대시대까지 당시 사용했던 도구와 서적, 생활문화가 그대로 남아있어 대한민국의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유명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번 째로 큰 강화도에서 하루만에 역사여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역사여행하다가 힘들어서 도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생길만큼 강화도 곳곳에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분들께 알차게 역사여행을 할 수 있도록 '강화도 역사교과서'의 대표페이지 '두 페이지'를 추천해드립니다.

 


p.1 강화역사박물관

▲ 강화도역사박물관에 관람객들이 들어가고 있다.



가장 첫 번째로 추천 하는 은 강화역사박물관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고인돌(사적 제 137호)의 공원내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은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강화문화유산을 보존, 활용하기위해 조사 연구와 전시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역사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청동기모형마을, 고려, 조선시대의 강화, 기증 또는 기탁된 유물전시, 강화의 바닷길이야기등을 한 곳에 모아 알려주는 강화도역사여행의 노른자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바쁜 일정에서도 1시간 정도면 강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떤가요?


 


▲ 강화역사박물관 내 참성단 안내 부스



단군성조가 366가지에 이르는 나라 다스린 공을 세우면서 제천에 대례를 행하고 보본의 뜻을 드높였던 마니산 참성단의 모형입니다. 매년 개천절에는 제천행사를 마니산 참성단에서 실시하고 있고, 전국체전에서는 이 제천단에서 봉화를 채화하는 의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채화도 마니산에서 진행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우리나라의 시작과 함께하는 참성단이 강화도 마니산에 있었고 반만년 역사의 숨결이 지금도 이어져오는  대표적인 강화의 모습입니다.


 

  고려 대장경과 대장경을 제작이유를 설명해 놓은 안내판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불력으로 이겨내고자 고종 23년(1236) 강화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동왕 38년(1251)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경남 합천해인사에 보관되고 있으며 1995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어있다."


고려의 아픈 역사와 당시 고려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생생한 문화재, 팔만대장경에 대한 역사적 가치까지 인정받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알려져 있죠. 고려대장경의 모습을 해인사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그 많은 고려대장경이 강화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화에서도 대장경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외세의 침략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대장경 제작은 고려사회를 흔들 정도로 막대한 국민적 부담을 가져왔지만,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기술의 발달을 이룩한 사실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서와서 대장경을 자세히 보세요!


 



▲ 고려 왕릉과 왕릉에서 출토된 고려청자



강화역사박물관에서는 고려왕릉에 대한 소개와 고려왕릉 등에서 출토된 강도시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고려왕릉을 통해 당시 고려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당시 강화의 문화상을 지켜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지막 사진의 왼쪽 문화재는 "청자죽순형주전자"로 죽순모양을 한 주전자입니다. 보통 죽순은 동양화에서 많이 쓰이며 계절을 의미하는 사군자에 쓰이거나 왕성한 성장력을 빗대어 인물이나 식물의 형상을 바탕으로 축하와 기원의 의미를 많이 쓰입니다.


12세기 후반 고려의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생활용품인 주전자에도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전자는 여러조각의 파손품을 수리한 문화재이기에 유약의 색이 왜곡된 색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과 프랑스군의 전투를 재현



▲ 강화도의 5진 7보 53돈대



조선시대의 강화도는 한양에서부터 수로를 통해 물자를 유통했기 때문에 강화도가 위치한 한강 하구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가 큰 황해안에서 큰 배가 드나들기에는 어려웠기에 강화도가 항구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강화도는 한양으로 가는 가까운 바닷길의 앞에 위치하고있어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1866년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병인양요, 1871년 미국이 제너럴셔먼호사건(1866)의 빌미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침략한 신미양요, 1875년 일본군함이 조선해안의 탐측을 핑계로 불법침투한 운요호사건 그 이후 강화도조약까지 강화도는 외세로부터 침략을 겪고 항쟁했던 전쟁터였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때 적의 이동을 막기위해 전투를 한 광성보, 운요호의 공격을 막아냈던 초지진등 역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후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외규장각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부스



1781년 정조부터 왕실 관계서적을 약 6,000권 가량을 보관했지만, 병인양요로 인해 외규장각의 의궤를 일부 약탈당하고 소실되는 아픈 사실을 소개하고있는 부스입니다.


외규장각의 도서는 조선시대 왕실의 상황과 조선문화를 하나하나 기록한 중요한 문화재로 손꼽혔지만, 많은 부분이 병인양요때 약탈 및 소실되어 조선역사가 하루 아침에 불타버리는 아픈 역사를 담은 문화재입니다.


1999년부터 한국과 프랑스 정부간에 반환협상이 시작되었으나 전부 반환받지 못했고, 프랑스측에서 외규장각도서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문화재를 프랑스에 내주는 '등가교환'의 주장을 내세워 문화계의 반발을 샀던 쟁점의 주인공입니다. 현재는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를 통해 외규장각을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해 296권 모두 반환되었습니다.


 

 ▲ 강화역사의 핵심을 짚어주는 영상실



강화도역사박물관에서 너무 많은 역사공부를 해서 뒤죽박죽 정리가 안된다면 무용지물이겠죠. 강화도 역사여행의 핵심을 짚어주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영상실!


강화고인돌과 초지진 나무캐릭터간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역사를 강화도의 모습을 들어 볼 수 있고, 역사공부에 지루함을 느끼는 분들께 더 재미있게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선사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현대 강화도의 모습까지 겪은 고인돌과 조선시대의 포격으로 몸에 구멍이 뚫린 나무의 모습에서 강화도의 이미지가 다시한번 정리될 것 입니다.


강화도역사박물관에서 더 깊은 강화도에 대한 역사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은 "이정미"해설사를 찾아 유익한 정보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정미"해설사는 강화도에 오시는 관람객분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Q. 어떤 계기로 강화군 해설사가 되셨나요?

▶ "해설사 활동하는 분을 알고 있었는데, 저도 해설사가 되고 싶어서 모집하기를 기다렸습니다. 3년정도 기다리니까 모집을 하더라고요. 해설활동이 제 성격과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저는 사람들과 대화나누면서 공부하는게 즐겁거든요."

 

Q. 실제로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있으실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 "어려움이라면 공부를 끝 없이 해야한다는 것이요. 공부를 해도해도 끝이 없어요. 특히 강화도는요."
또 성별, 연령, 경력등이 다양한 분들을 만나 즉흥적으로 해설을 해야하는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셨기때문에 사용하는 어휘나 목소리톤등을 해설수준등을 빨리 간파해야하죠. 하지만 직업특성때문에 공부를 더 할 수 있어 보람차고 즐거워요."

 

Q. 앞으로 강화도에 오실 분들에게 가장 알리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강화도의 총체적인 역사, 우리역사에서 강화도가 차지하는 큰 위치를 알리고 싶어요. 강화도를 공부하면 우리 역사가 보여요. 선사시대부터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현실까지 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곳이 바로 강화입니다.


지붕없는 박물관의 별칭을 가진 강화도, 우리나라의 역사의 숨결을 담은 생생한 역사교과서로서의 길을 걷고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나고 더욱 발전하는 우리 강화역사박물관, 아름다운  가을풍경이 가득한 지금, 바로 찾아가면 어떨까요?

 

P.2  강화 고인돌 유적지

강화 고인돌 유적지 내 위치한 북방식 고인돌



두 번째, 강화 고인돌 유적지 입니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는 강화역사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화도하면 고인돌, 고인돌은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 무덤양식입니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은 대략 70만년 전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에 이어 원시 농업경제사회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1000년 무렵인 청동기시대부터입니다.  농경생활로 인해 잉여생산이 발생하면서 사회집단에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생겨 청동기를 사용하는 권력자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 고인돌의 탄생 배경으로 추측하고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고인돌의 40%에 해당하는 약 3만기의 고인돌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지난 2000년도에는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이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의 고인돌은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한번 쯤은 봤을 고인돌의 모습입니다. 위의 고인돌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고인돌 중 북방식 고인돌중에 하나로 크기뿐만 아니라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춰 우리나라 고인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 관람객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글자가 발견되기 전인 선사시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어 그 당시 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문화재가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고인돌은 거석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 과학적인 기술정도를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런던의 스톤헤지, 페루의 마추픽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강화도의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생활문화를 알아 볼 수 있는 대표 문화재입니다.


 

▲ 세계 고인돌 분포도



전 세계적으로도 고인돌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등 각 지역마다 고인돌의 모양이 다르고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기에 고인돌을 평가하는 기준도 조금씩 다릅니다. 강화도에는 국내의 많은 고인돌 중에서도 강화역사박물관과 함께 강화도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강화지석묘가 바로 하점면 부근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세계적으로 많은 고인돌 문화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강화고인돌 중에서도 그 지역의 시작을 알리는 고인돌이 있다는 점!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죠!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생활주거공간이었던 움집



전문가들은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고인돌을 보려면 강화도로 온다고 합니다. 게다가 강화고인돌은 해발 100~200미터 정도 평균고도보다 높은 위치에 위치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천리 고인돌은 해발 300~350미터에 위치해 현재까지의 고인돌이 위치한 장소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니 고인돌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찾아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화도가 고인돌의 수가 많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산과 물이 풍부해 농경사회의 기틀을 빨리 잡을 수 있어 계층간의 분화가 빨리 생겼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있습니다. 게다가 고인돌을 만들 편마암이 풍부해 고려산과 별립산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15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있습니다.


 

▲  강화 고인돌 분포도와 고인돌 사진



고인돌의 위치를 보면 간척사업전의 강화도 지도로 미루어볼때 해안가 주변에 위치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청동기 시대에는 해안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해 어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농업과 어업이 조화되어 생활했던 청동기시대의 생활문화, 더욱 흥미가 생깁니다.


 

▲  강화 고인돌 유적지 전경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 저 무거운 돌을 떼어내고 옮겨 고인돌을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 일까요? 고인돌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고 왜 고인돌을 만들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  고인돌 축조방법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고인돌 축조방법

1. 고인돌을 만들 바위를 선별해 바위의 조그만 틈에 깊은 홈을 파서 나무말뚝을 박아 떼어낸다.
2.. 큰 통나무로 바퀴역할을 해 바위를 운반한다.
3. 고인돌을 축조할 위치의 옆에 땅을 파 바위를 세운다.
4. 고인돌이 올라갈 자리에 흙을 쌓아 둔턱을 만든 후 덮개를 올린다.
5. 고임돌과 덮개돌 사이의 공간에 주검과 부장품을 넣고 돌판으로 막는다.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을 이용해 만든 구조물 '거석문화'의 대표유적인 만큼 고인돌이 어떠한 목적의식을 채우기위해 돌을 이용해 숭배의 대상물 또는 무덤을 이용한 문화, 제사장소등으로 만들어 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인돌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고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거석문화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초기 농경사회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된 작업과 많은 공정이 이뤄지는 만큼 많은 사람들을 통솔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을 것이고,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보면 부족장등과 같은 지배계층이 고인돌의 주인이었으며, 부족장을 중심으로 천여명이상의 선사시대사람들이 살았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고인돌은 서해안지역과 호남지방에 밀집되어 있어 강화 고인돌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보존상태가 좋아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체를 보관하던 석실의 마감돌이 없어져, 일반 통로로만 보입니다.


예전 국사(현재 한국사)교과서 표지에 인쇄가 될 만큼 조형미가 아름다웠던 고인돌의 모습이 훼손되어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존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무덤보다는 제단이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 내에는 탁자식 고인돌 뿐만아니라, 개석식, 위석식 고인돌이 전시되어 있으며,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을 모형으로 제작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눈으로만 봐야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   강화 고인돌 유적지에 전시되어있는 고인돌



강화 고인돌 유적지는 강화를 대표하는 고인돌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고인돌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늦가을 나들이를 아직 떠나지 못하셨다면, 가까운 강화도로 역사여행을 떠나는 건 어떠신가요. 우리나라의 대표문화재로 손꼽히는 고인돌, 그 웅장한 모습이 바로 강화에 있습니다.


 

강화역사박물관

-관람안내
평일: 오전 9시 ~ 오후 6시
(매표마감 5시 30분)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요금
어린이, 청소년(만 7~18세) - 1000원 (단체 : 30인이상 - 800원 )
군인 - 1000원 (단체 - 800원)
성인 - 1500원 (단체 - 1200원)
유아, 노인(만 6세이하, 65세 이상) - 무료 (단체 - 무료)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대로 994-19 (하점면 부근리 350-4)
홈페이지 : http://museum.ganghwa.go.kr
안내번호 : 032-934-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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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팸투어, 강화도를 공부하면 우리 역사가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