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하는 인천/여행·명소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까지 골목길에 담긴 인천의 역사와 문화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까지 골목길에 담긴 인천의 역사와 문화




***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까지 타박타박 인천도보여행.

(중앙시장 - 배다리 - 창영학교- 영화학교  - 전도관- 경인철도기공지 - 박문학교 - 인천대학교)

 

인천하면 원삼국시대 미출홀에서 출발하여 삼국시대엔 삼국의 접전지였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도였던 개성에 인접한 해안지역으로 해양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강화도에 행궁이 설치될만큼 한양 방어의 주요지점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천은 근대에 접어들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니 제물포 개항과 1906년 인천내항이 개항된 후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수도권의 주요 수출입 항만으로서 역할을하면서  근대화의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인천을 가장 가까운곳에서 오랜 역사와 깊이 있는 문화를 만나는길_

바로 골목길 투어의 매력이 가득한곳이었으니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까지 이어지는 걷기여행에서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만났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1899년에 영업을 시작한 동인천역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종착역으로 1899년 9월18일 보통역 영업을 개시한 제물포역이었으니 동인천역이나 제물포역 모두 115년 우리의 철도역사를 안고있는 만큼 예전의 모습은 찾을수없고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친 모습이었답니다.

 

 

  

동인천역에서 출발한 인천의 역사문화 골목투어는 동인천역 뒷편의 중앙시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천의 중앙시장은 60-70년의 역사를 가진 재래시장으로 과거 인천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일반 시장이라하면 당연히 있어야하는 식품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 대신 예비부부들을 위한 한복과 침구, 신사 숙녀를 위한 양복과 양장 중고생들의 학생복에 이르기까지 의류와 침구류의 특화시장이었다고 하는데 이 시장의 특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긴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재래시장에는 고운 한복이 주욱 이어지는가하면

 

 

백만불라사, 우정양복점등 70-80년대의 시장풍경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으며 고급 브랜드가 아닌 맞춤형 학생복 골목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이 주욱 이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운영하는지라 추운 겨울에는 거의 오픈을 하지않는다는 노점상은 하루종일 이러한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는가하면 시장이라 하기엔 너무나 적막한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했는데 역시나 중앙시장은 현재 재개발 진행중으로  2017년에는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라고 하여 안타까웠답니다.


 

 

 

시장이란 곳이 수요와 공급의 경제원리가 철절한곳인만큼 사회적 변화에 빨리 대응해야하겠지만 곧 사라질 예정이란말에 또하나의 우리풍습이 없어지는 것 같아 밀려오는 안타까움을 애써 밀어내며 배다리 옛 책방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배다리는 동인천역 철교 오른쪽에 위치한 마을로 현재는 금창동이었습니다, 제물포항에 개항장이 들어서며 그 연안에 있던 조선인들이 떠밀려 들어와 조성된 마을엔 성냥, 간장, 고무신공장등이 들어섰고 바다에서 잡아올린 수산물과 인근의 논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이 집약되며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거기에 헌책방이 들어서며 동시에 향학열을 불태웠던 지역이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헌책방 또한 옛 역사속으로 하나 둘 사라지며 현재 남아있는 곳은 5개뿐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배다리는 옛 향수를 느낄수있던 문화와 정취가 여전하였으며 길을따라 아름답게 조성된 벽화골목은 걷기여행의 매력을 높여줍니다.


 

  

  

그렇게 걷다가는 철제 깡통로봇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멈추었던 space  빔. 나중에 알고보니 배다리 문화마을의 사랑방으로 벽화골목조성을 비롯한 역사문화마을 조성을 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중앙시장에서 출발하여 배다리헌책방으로 이어진 걷기여행은 그 이후로는 인천 교육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근대화과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인적자원의 산실로 초등학교에서 시작되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교육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인천동구 창영동 30번지에 위치해있던 인천공립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입니다. 1907년 4월 보통학교령에 의하여 개교된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로 1907년 12월 낙성식이 있었고 1910년 3월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1922년에 붉은 벽돌로 길게 지은 건물은 초기 근대건축양식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근대유물이기도 하였답니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구교사 뒷편으로 현재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신교사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7년전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된 어지러운 정세속에서 인재 양성의 산실이 되어주었음직한 초등학교는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본연의 의무를 수행중입니다.

 

 

그러한 역사와 함께 또하나의 기억해야할 사실로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이 거국적으로 확산될 당시 인천에서는 유일하게 지금의 창영초등학교인 공립보통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동맹휴학을 일으키고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던 3.1독립만세 인천지역 발상지이기도하였습니다.

 

 

 

 

창영초등학교를 나와 이번에 영화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그렇게 인천의 옛역사를 찾아가는 골목길은 옛문화복원사업의 일종으로 곳곳에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있어 미쳐 남겨지지 않은 풍습들을 대신합니다.


 

 

창영초등학교가 인천최초의 초등학교라면 영화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입니다. 1892년 4월 미국선교사 죤스부인이 영화학당을 설립하였고 1912년에 사립영화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66년에는 샛별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기도 하였었으나 1973년 다시 영화라는 이름을 찾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초등학교와 영화관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고 있네요.


 

 

새로운 신식건물사이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있던 옛 학교건물은 1910년 3월에 준공한 건물로 내부는 성서연구와 기독교 교육을 목적으로 교회내에 설치하는 전형적인 주일학교 형식을 취하고 있다합니다.


 

 

그러한 여행길은 타박 타박 인천걷기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어느정도 예상을 했었음에도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남겨져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속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 보이고 현재의 발전된 사회의 기틀이 되었음직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있기에 여행이상으로 고장의 이야기를 알아간다는 뿌듯함이 느껴져오는 골목여행입니다.

 

 

 

우각로길 골목길 끝까지올라 찾아간곳은 현재는 빈 건물로 남아있던 전도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폐허와도 같이 방치된 모습에 맞는걸까 여러번 확인했던 건물로 1884년 의료 선교사로 인천에 온 알렝이 1890년에 별장을 지어 사용하였으며 1956년 알렌 별장이 철거된 뒤 현재 이 모습의 교회 전도관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현재 인천시에서 매립하여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으로 추진될 예정이라고 하니 조만간 산뜻하게 변화된 모습을 만날것 같습니다.


 

 

그러한 전도관 아래로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비롯하여 도원역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러한 걷기 여행 중 맛있는 먹거리는 필수, 전도관으로 향하던 길에 봐주었던 홍콩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짜장면2,500원, 짬뽕 3,000원 저렴한 가격표를 확인하고 들어온길인데 짜장면의 도시답게 가격대비 푸짐한 양에 맛까지 만족스럽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맛있는 짜장면이었답니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한 뒤 경인철도 기공지가 있다는  도원역까지 내려왔습니다.

 

  

도원역을 조금 지난 큰 대로변에 한국철도 최초기공지가 있습니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경인철도는 인천역과 노량진역 사이의 31.5km구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해도 우마차등의 육로나 수로를 이용하며 반나절 이상 걸렸던길이 철도가 개통되면서 한시간으로 단축되게 됩니다. 당시 경인철도 부설권을 획득하 미국인 모스는 우각현 언덕에서 1차 기공식을 가지게 됩니다. 1899년 9월 13일 인천역에서 개통식이 거행된 두 인천과 노량진 사이의 철도영업이 시작된 역사적 현장이었습니다.



 

이번에는 1940년에 개교 약 7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박문중고등학교입니다. 1940년 4년제 8학급의 소화고등여학교로 개간한 사립학교였습니다. 비교적 오랜역사를 가진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와 인천최초의 초등학교였던 창영초를 보고왔던지라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로 느껴집니다.


 

 

동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박문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골목길 여행이 짧은 거리내에서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접했었다면 마지막 지점인 인천대학교로 향하는 길은 그전에 비해서는 거리간격이 제법 느끼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길엔 그밖의다양한 학교가 포진되어있어 사학의 지역인 듯 특별한 감각으로 다가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약 30여분을 걸어 도착한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랍니다. 인천대학교는 1979년 인천공과대학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3월 12일 개교되었으며 1979년 인천대학으로 변경된 뒤 1988년 좋합대학교로 승격되었고 당시 인천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1994년 3월에는 시립화 되어 시립인천대학교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2013년에 국립대학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2009년 송도캠퍼스가 준공되면서 거의 대부분 이전이 되었고 제물포캠퍼스에는 일부학과만 남겨졌다고 합니다.


 

 

휴일 오후 캠퍼스는 붉은 가을 단풍과 대조되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동인천역에서 제물포까지 인천의 역사문화를 되짚어보는길은 무심코 지나다보면 항상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늘 접하는 풍경인데 좀 더 주위를 기울이고 들여다보니 아주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바닷가에 인접한 인천의 지역적 특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격동기의 변화에 맞서 함께 발전해간 흔적들이 보입니다. 시간이 멈춘듯한 풍경이 좋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며 함께하기 좋은여행 인천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말 누군가와 함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을 더듬어 보고싶으시다면 동인천역에서 출발하여 제물포역까지 이어지는 인천의 역사문화길이 아주 적격일듯 합니다.


 




***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까지 골목길에 담긴 인천의 역사와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