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하는 인천/여행·명소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해설이 있는 강화도 나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해설이 있는 강화도 나들이



***





▲초지진 [ 草芝鎭 ] 사적 제225호. 1716년(숙종 42) 강화 해안을 지키기 위해 조직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적지이기도 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와~  강화도에는 이런 돌성 같은 것도 있었구나..."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막내 딸은 초지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초지진 [ 草芝鎭 ] 의 역사에 대해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해설하는 와까즈끼에이꼬 해설사

 

 

지난 11월말에 저와 같이 인천시 서구에 살고있는 일본, 태국 부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다 함께 강화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큰 아이는 우리 큰아들도 포함한 중2생이였고, 어린 아이는 아직 돌도 안되는 아기였지요. 다 합치면 30명 가까이 인원이 되었으니까 아무래도 대형버스를 불러서 가게 되었지요.

 


▲미국함대의 함포공격에 성벽 동쪽밖에있던 이 소나무는 윗둥치가 부러져나가고 나무 둥치에 맞은 탄환의 흔적이 지금까지있단다.


평소에 격주 주말마다 강화도에 사시는 시어머니를 찾으러 가고 있긴 하지만, 항상 바쁘게 지나가기만 했던 초지진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여유있게 찾아가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막내딸에게 초지진은 처음으로 보는 돌성과 같은 신기함이었습니다.


 

 

이 날은 아쉽게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안개가 생각보다 많이 끼어 원래 예정됐던 통일전망대에서 목적지를 바꾸었습니다. 가더라도 별로 북한쪽을 못볼 것 같아서죠. 그대신 초지진, 성공회성당 주변 나돌길, 고인돌, 그리고 새로 생긴 교동대교 등으로 찾아 가보게 되었습니다.




▲강화나들길 14코스인 "강화도령 첫사랑길"은 강화도령 원범(철종의 아명, 1831~1863)이 강화도에서 귀양살이중 강화도 처녀 봉이와 나누었던 풋풋한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인 강화 성공회 강화성당.

 

 

한일간의 가교가 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


▲초지진 앞에서 해설중인 와까즈끼에이꼬 씨, 우리 아이들에게는 알기 쉬운 한국어로, 우리 일본 어머니들에게는 자세하게 일본어로 추가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이 날은 특별히 많은 일본 부인들 위해 특별한 가이드를 모셨습니다. 바로 강화도에 거주하시면서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활약중인 일본 부인 선배인 와까즈끼에이꼬 씨였지요. 강화도를 찾아온 일본 방문객들은 물론 일반 방문객들에게도 해설하고 있다는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창문이 얼마나 추위를 막을 지혜가 있었던지 일본의 창문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에이꼬 씨

 

- 어떤 계기로 해설사가 되셨나요?

" 10년쯤전에, 전 강화군수 사모님께서 봉사로 강화의 역사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셔서 주변의 일본부인들과 같이 배우러 갔지요. 그분의 추천으로 해설사 육성 강습에 참가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래 역사에 관심도 있었지만 그분이 정말 잘 역사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더 공부하고 싶었고, 막내 아이도 유치원에 입학해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에 활동하려고 생각했지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성공회 강화성당의 지붕은 기와로 된 한옥이지만, 출입구문은 서양식으로 보이기도 하고, 동양과 서양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 활동중의 어려움, 보람 등 있다면?

" 저는 강화군 해설사 42명중 유일한 일본원어민해설사입니다. 그러나 서울이나 인천시내와 달라서 강화에는 일본 손님이 수시 방문하지 않지요. 그래서 평소는 한국 분에게 한국어로 해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탁음을 내거나 받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발음이 좀 어색했던 것 같네요. 해설이 능숙하게 못하면 저도 아쉽지만, 손님에게도 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요.


또 최근의 일한 관계의 악화로 인해 저를 일본인의 대표라고 생각해서 반발적인 표현을 하시는 분도 계셔서 질려버린 적도 있지요. "


 

 

"그러한 중에서도, 이 해설사 활동을 통해 국가의 지원으로 역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보수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근무가 비어 있는 시간대는 배울 수 있으니 취미와 실익을 겸해서 좋지요. ^^


일본 손님들은 한국의 입장에서 본 한일간의 역사를 거의 모르겠지요. 그러한 의미로 귀화한 일본인으로서 한국인의 입장부터 역사를 소개할 수 있고, 한국인의 안내원이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정확한 일본어로 설명할 수 있어요. 일본의 역사와 대조해서 설명할 수 있으므로 일본 손님에게 한국을 자세하게 알려 드릴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가교가 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은 성공회 강화성당의 옆에 있다.




▲강화산성 북문가는 길에서 보이는 고려궁지내 동종



-강화도를 방문하는 분에게 메시지 있다면?

" 강화는 고대부터 해상교통의 거점으로서 번성하고, 중세에 있어서는 한강의 하구라서 수도에 가는 현관 역할을 다했지요. 그러니까 강화는 한국의 역사 축소판이다 라고 할 수도 있지요. 또 근세에 있어서는 수도방위의 최후의 성채이었습니다. 곧 강화가 함락하면 나라도 함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러한 의미로 강화는 섬 전체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병사들의 묘지 라고 할 수도 있고요.



 


▲ 나돌길을 한10분쯤 걸어와서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 먹었던 젓국 갈비나 순무김치 등의 반찬도 강화도에서 맛볼수 있는 인기 음식이다. (사진제공: 야타니 미와)


 

강화를 방문하실 때는 그러한 나라를 위해서 희생이 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심정으로 관광하신다면 보다 깊은 역사기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국정신, 호국정신을 심신으로 느껴지는 강화에 꼭 놀러 와 주세요. "


 

 

 

 '지붕없는 박물관' 이라고 불리는 우리 강화도로 오세요 

 


▲강화도 장날은 끝자리가 '2'나 '7'로 끝나는 날이라서 평소보다 더욱 많은 상인들과 손님이 보입니다.



한국인의 남편과 결혼해서 고등학생, 중학생 아들 둘이 있는 그녀는 최근의 한일 관계의 악화로 아들들도 괴로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들에게는 한국은 모국이며 아버지의 나라이고 일본은 외조부모가 있는 어머니의 나라지요. 가정에서 부모가 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는 것과 같이 한국과 일본이 외교 문제로 마찰이 크면 재한일본인이나 그 가족, 아이들은 어떨까요? 그러한 의미라도 한국, 일본 쌍방의 손님에게 양국의 가교의 일단을 짊어질 수 있으면 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이 날은 계속 안개가 껴서 교동대교에 가서도 북한쪽은 보이지도 않고 결국 풍물사장에 들렀다가 인천시내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시장을 보는 엄마들을 위해서인지? 아이들이 기다릴 동안 타고 놀 수 있는 그네도 생겼던 풍물시장.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소에 알아듣지도 못했던 강화도의 깊은 역사 이야기의 한부분이라도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이 었던 것 같아요. 특히 우리에게는 질문하기 어려운 부분도 일본어로 해설 들 수도 있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한국과 일본 양측의 입장으로 다시 한번 역사를 바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 생겼던지 귀엽게 그려진 지도나 DJ부스 등, 갈때마다 조금씩 변화가 보이는 풍물시장.


 

앞으로 우리 인천시에서도 그녀와 같은 이주민출신 문화해설사도 많아지면서 자신의 출신국과 자신이 사는 지역을 맺는 가교역할을 하고 나가면 우리 인천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특히 '지붕없는 박물관' 이라고 불리는 우리 강화도에는 꼭 많은 외국인, 시민들이 찾아 와줬으면 합니다.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입 문의: 강화군 관광개발사업소  032-930-4341

 

***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해설이 있는 강화도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