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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인천명소]봄기운이 느껴지는 원인재 찍고 승기천까지 즐기는 산책길

 

봄기운이 느껴지는 원인재 찍고 승기천까지 즐기는 산책길

 

봄이 오는듯 요즘 날씨가 많이 푸근해졌고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에는

정말 개구리가 팔짝 뛰어오를것 같은 기온이라 겨울동안 움추러들었던

신체가 기지개를 펴고 활동하기에 좋은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저도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찾은 곳은 그동안 환승역으로 알았고 그 역명의 어원이 된

원인재를 가기위해 원인재역입니다. 

처음에는 원인재를 가보고자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원인재까지 걷다 보니 공원도 좋고 공원에서 보이는 승기천 습지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도 좋아 원인재와 그 주변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원인재를 들러 도로옆 인도보다는 봄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공원안의 산책길로 들어서고 싶었던 날이었습니다.

 

 

원인재역의 작은문화공간 : 원인재 작은갤러리

 

 

 

원인재역에 내리면 원인재로 가는 1번 출구쪽으로 걷다보니

 원인재 작은갤러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연수구 예술인 연합회에서 주관해 한 달에 한 번 주제를 바꿔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그저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공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작은갤러리가 있음으로 인해서 문화적 공간의 역할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관람을 하면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원인재역 1번출구로 나오면 공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굽이 진 흙길이 나옵니다.

겨울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연수 둘레길을 걸으면 봄을 만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흙길을 잠시 걷고 있으려니 앞쪽으로 원인재가 살짝 보이고 있는 담벼락을 만나게 됩니다.

 

 

 

 

원인재에 다다르기전에 만날 수 있는것이 쌍명재 이인로선생 문학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인로 선생은 문장으로 나라 안팎에서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주자를 뵙고 학문의 요령을 배웠으며

은대, 쌍명, 파한 등 문집 셋을 남겼다고 합니다.

 

 

 

 

도로옆에 위치해 있어 인도를 걷다가도 만날 수 있어

우연하게 찾아 오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았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이 근처를 산책하시다가 들르게 되었다는 어르신들도 계셨습니다.

 

 

 

 

 

  • 원인재(源仁齎)의 유래

    원인재는 인천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 5호로 인천 이씨(仁川李氏)의 시조(始祖)인 고려국 소성현 개국후 이허겸의 모역을 수호하고 제사를 받들기 위해 19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연수동 신지마을에 있었으니 1994년에 택지 개발로 해체되면서 현재의 장소인 묘역옆으로 옮겨져 복원 및 증축되었다.

    원인재는 '인천 이씨의 근원지'라는 뜻이며, 복원 및 증축은 인천 이씨의 일족의 성금과 인천시의 보조금으로 이루어졌다.

 

  • 인천 이씨(仁川李氏)의 유래

    인천 이씨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후예로 비조(鼻祖) 허기(許奇)에 이르더 당()에서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파견되어 당 현종을 호위하게 되고 그 공로로 황제의 성인 이씨(李氏) 성을 받고 당 현종이 신라 경덕왕에게 전하는 오언시를 갖고 돌아와서 소성백이 되었다. 그 자손이 대대로 소성(현 인천)에 살다가 고려 8대 현종조 이허겸(李許謙)에 이르러 소성후 식읍 천오백 호에 봉해지면서 소성(邵城)’을 보관으로 하고 그를 시조공으로 모셨다. 그 후 고려 말까지 소성후 이허겸의 많은 내.외손들이 왕과 신하로서 정사를 조도하며 고려의 전성기를 누렸다. .외손에는 인예태후 등 열 분의 왕비와 여덟 분의 왕인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현종, 숙종, 인종이 있다.

 

  • 인천(仁川)의 내력

    인천은 본디 고구려의 매소홀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소성현으로 고치고 고려 숙종 10(서기 1105)에 어머니인 인천 이씨 인예태후의 고향으로 경사의 근원지라 하여 이름을 경원으로 바꾸고 경원군으로 승격하였다. 인종조에는 어머니 인천 이씨 문경태후의 친정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불렀으며, 공양왕 2(서기 1329)에는 고려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인주가 왕의 본관이라 하여 경원부로 승격하였고, ‘7대 어향이라 불렀다. 그 후 조선 태종 13(서기 1413)에 지방 제도를 개편하면서 인천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인천 이씨 본관도 소성, 경원, 인주, 인천으로 바뀌었다.

     

     

     

 

 

신도비

 

신도비명서

 

신도비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원인재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었습니다.

 

 

 

 

 

 

 

도심속에 현대적인 건물들과 공존하고 있는 만큼  옛 건물앞에 서니 당당함에

얼른 들어가보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곳을 찾는 이들은 계획에도 없던 관람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 싶을 정도로

공원을 걷다가 혹은 승기천을 걷다가 들어와서 보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문이라 생각했던 마당에는 주차장이 있고 신도비등이 있는 옆쪽으로 문이 하나 있는데

현판에는 첨소문이라 씌여 있습니다.

이 곳은 보기엔 원인재로 들어가는 정문인듯 하나 사실 후문이라고 합니다.

정문은 원래 건물 반대편에 위치한 경선문이 정문입니다.

 

 

 

 

 

 

첨소문으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첫 건물은 돈인재입니다.

돈인재라 하는 원인재의 강당이라 일컫는 건물입니다.

이 곳 건물을 둘러 기둥마다 26개의 구련의 시구는 금색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어혁인이삼한구족(於赫仁李三韓舊族)

'아..훌륭하구려, 인천 이씨는 한국역사의 뿌리 깊은 씨족이라네'로 시작하는 글귀로 시작하여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인천 이씨의 인천에서 살아 온 이야기와 후손들의 바람을

 글로써 새겨 놓은 거라고 합니다.

돈인재 현판은 1999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편액한 것이라고 하네요.

 

 

 

 

경선문에서 바라다 본 가운데 돈인재를 비롯해 우측에 율수실(서재)과 좌측에

승휴당(동재)이 위치해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와 대비되는 모습이라 역시 인상이 깊었습니다.

 

 

 

 

 

승기천방향의 울타리쪽으로는 헌성비가 있었는데 원인재의 개증축을 하면서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재실인 원인재입니다.

원인재는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아 진흙 기와를 사용하였지만

 근래 다시 신축한 다른 건물들은 화강석 기단과 동()기와를 사용한 점이 다르다고 하네요.

사진에는 없지만 원인재 옆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는 명인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처음에는 원인재 건물 하나만 있었고 이 외의 건물들은 신축하여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고 합니다.

 

 

 

 

돈인재쪽에서 보니 옆쪽 소나무 숲 언덕에 이허겸의 묘가 보입니다.

 

 

 

 

 

돈인재를 마주보고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은 동재인 '승휴당'으로

조상의 음덕을 아름답게 이어 받는 집이란 뜻이라 합니다.

 

 

 

 

돈인재를 마주보고 왼편에 위치한 건물은 서재인 '율수실'로 조상의 음덕을 이어받아

갈고 닦는 집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곳이 후문인 첨소문 반대편인 승기천 방향에 위치한 경선문입니다.

실제로 이 곳이 정문이지만 지금은 첨소문이 정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해 한식날에는 춘향대제를 지내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원인재의 정문인 경선문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고 합니다.

묘앞에서 일반적인 춘향대제 방식과 같이 3명의 헌관(獻官)과 10여명의 제관이 함께

 제사를 지내는데 예전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관을 하고 싶으시다면 한식날에 찾아가 보는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된 소나무를 돌아 저는 이허겸의 묘로  걸음을 옮깁니다.

 

 

 

 

묘에서 내려다 보이는 돈인재 건물.

도시에서 느껴보는 자연과 옛정취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계절속에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힐링이 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허겸의 묘를 찾아 올라가는 중 만나는 비석들과 묘의 모습입니다.

 

인천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李許謙)의 묘로, 천 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묘가 있는 자리는 과거에 간치도(看雉島) 즉 까치섬이라 불렸으며,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송도 갯벌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섬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풍수지리상 이허겸의 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이라 하는데

지관들은 인천이씨 문중이 그로 인해 고려시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왕실과 척연을   맺으며 크게 세력을 떨치고 영화를 누렸다고 하고 

이허겸은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인물로서,

인천이씨는 이허겸 때부터 고려시대에 귀족대열에 낄 수 있게 되었다 합니.

 

이허겸의 묘는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넓은 잔디가 펼쳐진 묘 주위로는 오래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묘역옆쪽에는 재실인 원인재가 굽어 보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2m, 둘레는 약 15m입니다.

 

 

 

 

 

묘앞에 서 보니 승기천과 공단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도시에서 공존하는 옛건물, 공원, 하천 그리고 공업단지의 풍경이 대비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앙문은 정문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밖에서 묘역을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

현재는 첨소문에서만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합니다.

 

이제 원인재를 나섭니다.

 

사계절 아무때나 들러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것처럼 원인재에서의

자유로운 관람과 더불어 갖게 되는 여유로운 시간,

그리고 주변에 있는 공원도 걸을 수 있어

일부러 찾아오려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이웃 같은 곳입니다.

 

 

 

 

원인재를 나서면 만나게 되는 공원길...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햇살을 느껴보면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오후시간을 걷기 혹은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굳이 명소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봄나들이를 나설 수 있는 가까운 이 곳.

승기천은 도심에 철새가 날아드는 하천이며,

인천광역시 남동구와 연수구 사이에 흐르는 지방 하천으로

 옛날에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마을이 다시 생겨나면서 이어졌다고 하여

 '승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승기천 옆으로 공단이 있어도 하천에서는 철새들의 한가로움 몸짓이 있었고,

작은 인기척에도 훨훨 그 위로 나는 모습에 하천이 함께 하는 이 곳이

 아직은 깨끗하고 우리 스스로가 지켜 나가야 할 곳이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푯말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꽃 피는 봄을 필두로 초록의 세상이 펼쳐지고 색색의 꽃이 피어날

그런 날을 생각하며 기다리게 됩니다.

 

 

 

 

작은 목교아래로 흐르는 실개천 버들강아지는 봄이 왔다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둘레길 아래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가에 활짝활짝 핀 얼굴로 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철새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물위를 둥실둥실 떠 다니고 있는 이 곳.

물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뜻이겠지요.

 

 

 

 

눈에 보이는 구름다리모양의 목교를 만났습니다.

습지를 걷다가 위쪽으로 오르지 않아도 물 건너 반대편쪽으로 건널 수 있습니다.

 

 

 

수인천 철교가 보입니다.

순간 전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원인재역쪽으로 걸으니 만날 수 있었던 현수교방식의 육교의 모습입니다.

미니 현수교라고 해야할까요?

길이로는 길지 않지만 멋져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다리였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공단으로의 연결다리로 회사원들,

학생들 등 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있었습니다.

 

 

 

 

승기천 종합 안내도를 보니 제가 가 보지 않았던 곳까지 알 수 있더군요.

다음번에는 초록잎들이 쏙쏙 나와 반기는 계절에 찾아와 곳곳을 걷고 싶습니다.

 

승기천에 가면 공원, 습지, 실개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속에서 힐링이 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다 보면 꼭 전원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도시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친근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위사진)

 

 

연수둘레길도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사는 곳에 몰랐던 힐링의 공간이 많이 숨어있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우리동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굳이 멀리 있는 자연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집 밖으로 나오면 만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가족과 함께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우리동네로

봄나들이 나오시는건 어떨까요?^^

 

 

▲원인재 찾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