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국갈비 맛은 결국 새우젓이 판가름한다고 할까? 돼지갈비야 어느 업소든 다 일등품을 쓸 수 있지만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강화 특산 새우젓은 따라 올 수가 없다. 또 그 새우젓을 어떻게 일등품으로 숙성시켜 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글 김윤식 시인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음식의 맛과 주인의 친절이 밥집 재산
장맛비가 쏟아지기는 해도 7월은 7월인지라 뭐 좀 냉한 음식이 없을까 하던 차에 동행 사진작가가 권한 곳이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 옆의 제법 오래된 묵밥집이었다. 시원하기로야 냉면이 제격이겠지만 여름이면 누구나 꼽는 냉면보다는 묵밥이 별미로서 좋을 듯해 우중에 행차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묵밥집에 당도하고 보니 주인이 한사코 면담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글로 쓰이고 하는 따위의 일이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그때 마침 함께 따라나섰던 강화문화원 사무국장이 여기저기 알아봐 연락이 닿은 집이 새우젓국갈비로 소문이 났다는 집 ‘1억조 갈비’였다. 냉한 음식을 찾아갔다가 거꾸로 더운 음식을 만나게 된 꼴이었다. 그러나 몸은 장마 빗줄기에 젖고 마음은 생각지 못한 낭패를 본 터라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는 차라리 칼칼한 젓국갈비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무슨 열 많은 돼지고기람?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돼지고기를 다스리는 새우젓이 있으니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은 당치 않다. 차를 세우고 걸어 새우젓국갈비집이 있다는 골목길 입구로 들어서다가 아니, 이 길은? 하고 놀랐다. 반갑기도 했다. 동문안길 21번길. 길 이름은 이렇게 붙었지만 틀림없는 용흥궁(龍興宮) 길이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문인 몇과 함께 ‘강화도령’으로 불리는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의 잠저(潛邸)인 이 용흥궁을 답사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억조 갈비’는 그 골목 안쪽으로 5,60미터쯤 들어온 곳, 용흥궁 조금 못미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억조’가 관청리 468번지, 용흥궁이 441번지. 답사 때 이 길을 들어서면서는 전혀 관심 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아니면 혹 보았다 해도 기억에 둘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실로 우연히, 일이 생각지 않게 꼬이면서 와 앉게 된 것이다.
여주인 임경자씨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뵈는 갸름한 얼굴에 스스로를 공주로 부르는, 매우 밝은 성격을 가진 유쾌한 분이었다. 부모는 개성에서 피난해 오신 분들이었다. 임씨는 강화여고를 나온 강화 토박이로 강화문학회 소속 시인이라며 ‘강화’를 세 번 연거푸 발음하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더니 잡지 비슷한 책 한 권을 내놓으며 ‘함바 이야기’라는 자작시까지 보여준다. 그리고는 강화에 사는 인천문협 소속 한 여류수필가에게 전화를 걸어 어서 오라고 한다.
옛 인천의 원로 한 분이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 주인의 성의와 친절이 밥집의 재산’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여주인 임씨를 대하면서 ‘일억조 갈비’ 이 집이 그 말씀에 꼭 들어맞는 집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종업원도 천성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집에서 주인을 따라 닮은 것인지 역시 수더분하면서 밝고 친절이 넘친다.
소박하고 소탈한 맛, 입안에 구수하게 퍼져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이내 자칭 ‘어머니 손맛의 젓국갈비 원조’라는 이 집 간판 음식 젓국갈비냄비가 나와 불 위에 얹힌다. 근자에는 새우젓국갈비가 각지에 퍼져 웬만하면 다 이 맛을 보았을 테지만, 25년째 돼지고기와 갈비를 다루어 온 ‘일억조’의 젓국갈비 맛은 남다른 데가 있다.
우선은 주인공인 새우젓국과 돼지갈비가 참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이다. 국물은 들뜬 듯한 단맛 대신에 다소 덤덤하고 엷은 염기가 느껴지는 정도였다. 언뜻 소박, 소탈하다고 할까. 그러나 그렇게 몇 숟가락을 넘기고 나면 비로소 깊고 구수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다른 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흠씬 무른 돼지 갈빗살은 입 안에서 흡족하게 녹는다. 국 속에 든 홍고추, 청량고추, 호박, 감자, 파, 두부의 색감도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다. 인삼 한 뿌리는 더 고급 영양을 위한 것인지…. 밑반찬으로는 또 하나의 강화 특산, 독특한 향미를 가진 순무김치가 단연 일품이다. 그와 더불어 호박무침, 부추김치 ,풋고추 무침 따위도 갈비를 씹고 난 입을 썩 개운하게 가셔 준다. 거기에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오며가며 들러 한 국자씩 건더기와 국물을 퍼주는 임씨의 다정함도 국 속의 깨처럼 고소한 몫을 한다.
“저는요. 우리 고향 강화의 토속음식인 이 새우젓국갈비를 본래 그 맛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 메뉴를 저희 집 간판 음식으로 정한 거구요.”
원래 새우젓국돼지갈비는 고려 왕실이 몽고군을 피해 천도했을 때 왕에게 진상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강화 특산인 새우젓과 연관시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팔백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이 음식을 최근 강화군이 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내세워 널리 대중화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넓은 홀에 두 줄씩 테이블이 놓였다. 특이하게도 의자는 무슨 옛날 중학교 때 것처럼 앉는 면의 나무 간격을 띈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의자다. 오랜만에 교실에 들어와 앉는 느낌이다. 재미있다. 여름에는 그래도 시원할 것이다.
홀에만 대략 40명의 손님이 앉을 수 있고, 홀 양쪽으로 7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다. 한 번에 총 2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이다. 과거 예식장이 있어서 피로연 단체 손님을 받을 때는 이 방들이 가득가득 찼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주방 구석에 걸린 큰 가마솥은 그때 피로연 국수를 삶아 내던 것이다. 건평만 110평이라는 건물은 지어진 지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창살이나 대문 등은 한옥풍 모습인데 나머지는 편리를 위해 이리저리 개량해서 정체불명의 건축 양식(?)이라고 할 것이다. 바깥 담, 회벽 아랫도리에 바른 시멘트 위에는 난데없이 벽화를 그려 놓기도 했다.
어쨌든 8백 년 전 고려의 왕이 여기로 피신해 와 먹었다는 새우젓국갈비가 아침 일찍 인천을 떠나와 좀 전까지 낭패했던 마음을 활짝 풀어준다. 국물을 훌쩍이는데 마침 이 집 단골손님인 관청리 터주 성일약국 대표와 그 일행이 들이닥쳐 삼겹살을 굽는다.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고등학교 선후배 동문이다. 자연 소주 한잔이 건너오고 어쩌고 한다. 그러자 보다 못한 임씨가 입을 연다.
한여름엔 ‘이열치열’, 더운음식이 더 시원
“1990년이 될 무렵 친정어머니께서 내가 이제 나이가 먹어 못 하겠으니 네가 한번 해보련?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한다고 했죠. 남편은 직장에 다녔지만요.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인데, 내 성격 그대로 긍정적으로 이 일을 해 왔어요. ‘일터는 꿈터’ 이것이 내 생활 목표면서 이상이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올려다봐요. 그리고 오늘도 행복하자. 이렇게 다짐해요. 마음이 천국 아닌가요? 음식을 만들면서도 이 밥을 잡숫는 분, 오늘도 좋은 일 많이 있으세요. 이렇게 기원하고요.”
아름다운 마음이다. 금실 좋은 남편은 직장을 접고 함께 가게를 운영했는데 얼마 전 조기 축구팀에서 운동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쳤다고 한다. 그래 요즘은 군에서 제대한 아들이 아버지 대신 10여 군데 단골들 식사 배달 차를 운전해 준다고 한다. 이참에 아들이 식당 일을 배워 대 물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집 일이다.
일어서려는데 또 자기 시동생이 그 유명한, 인하대와 대한항공에서 배구 선수로 명성을 날린 한장석 선수라는 말을 한다. 현관 앞 구식 공중전화 앞에 한 선수의 모습이 액자에 끼워져 있다. 역시 좋아했던 선수였는데…. 여기 있으면 별별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 듣고, 알고 갈 것 같다. 비는 내리고, 갈 길은 멀고….
이열치열. 한여름에는 오히려 이렇게 더운 음식이 오히려 더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착한 식당’을 나와 다시 인천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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