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찾아 온 거야?”
대나무 앞을 기웃기웃하니 의아한 듯 물어왔다.
옆집 상인과 담소를 나누던 정순희 할머니(77)가 이 대나무가게의 주인인가보다.
“이렇게 큰 대나무를 어떻게 팔아요?”
“잘라서도 가져가고 트럭으로 싣고 가기도 하고 그러지 뭐. 에휴, 안 팔려.”
“대나무, 많이 쓰이지 않아요? 여기 쓰레받기도 대나무 손잡이네요!”
“많이 쓰이긴 허지. 바닥에 깔기도 하고 쪼개서 발로도 쓰고, 가구도 만들고, 고기 잡는 데서도 가져가고, 저기 저 소쿠리 같은 것도 만들고 하니까. 근데, 요즘은 통 사람들이 안 오네. 힘들지, 힘들어.”
정 할머니는 말 끝머리마다 입버릇처럼 힘들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쓰일 곳이 많은데도 정작 대나무를 사러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거다. 인근에 대나무를 팔던 가게도 전부 문을 닫고 이제 이곳, 충남죽재사가 인천에서 대나무를 파는 마지막 가게가 되었다.
“충남 공주에서 왔어. 23살 때인가, 남편 따라 인천에 와서는 장사를 시작했지. 남편이 대나무로 소쿠리도 만들어 팔고 했지. 기술자였어. 그러다 19년 전에 먼저 떠났지. 요샌 사는 게 재미가 없어. 너무 더워 그러나? 찬바람이 불면 좀 나을는지…….”
괜찮을 때는 하루에 열댓 명도 오고갔지만 요샌 한 명만 들어와도 고마울 정도란다. 젊어서부터 남편이 해오던 일을 맡아하는 정도라고 말하지만, 정 할머니에게 대나무는 반세기를 함께한 동반자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대나무랑 있으면 참 좋아. 이 냄새가 얼마나 좋게? 대나무 냄새는 약이야. 나 젊어서 몸이 안 좋아서 죽는다고 했어도 여지껏 살아 있잖아. 이 냄새가 약이라구…….”
말하면서 50cm정도로 자른 대나무로 어깨며, 배며 사정없이 두드리는 정 할머니였다. 손때가 묻어 반지르르해진 대나무가 뭉친 근육을 툭툭, 푸는 소리가 난다. 아마 정 할머니에게는 냄새뿐 아니라 대나무 자체가 약이 아니었을까?
“난 이일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고 나는 그냥 자리 지키는 거지 뭐. 아들은 여기저기 대나무 사러 나갔어. 아들도 나이가 벌써 쉰일곱이야. 힘들다고 못하겄대. 아쉬워도 어떻게 해. 문 닫을 때가 된 거지.”
이곳 충남죽재사마저 사라지면 인천에서 대나무파는 집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폭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던 대나무다. 그런 대나무가 세월의 무관심 속에서 기개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없어지는 거예요?”
“남이 와서 하겠다고 하면 모를까. 두고 봐야지 뭐.”
정 할머니는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대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온 매미소리가 더 필사적이다. 여름이 끝나가긴 하나보다.
차지은 청년기자 minsable@hanmail.net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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