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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그리운 싸리재를 커피에 담다 ‘카페 싸리재’



이제 ‘싸리재고개’의 역사는 점점 희미해지는 흔적들과 함께 하나 둘 자취를 감추려고 한다.

그 뒤안길에서 흐르는 그리움들이 커피 향을 타고 가을바람에 솔솔 흩날리는 중구 경동.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거리에 내걸린 간판만으로도 이곳이 싸리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곳이었다. 

싸리재 상회, 싸리재 다방, 싸리재 약국...‘싸리재’라는 상호는 언젠가부터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카페 싸리재’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싸리재의 역사를 한 가닥 붙잡고 커피에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카페 싸리재’의 박차영(64세)대표다.

“배다리 철교를 지나 신포동을 이어주는 경동 거리를 싸리재라고 불렀어요. 인천이 개항장으로 활성화되면서 인천 최초의 항도 백화점, 포목점, 잡화점 등 다양한 상점들이 생겼죠. 그 시기에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했어요.” 박대표는 지나간 역사들을 말하며 커피분쇄기에 원두를 넣는다. 금세 커피향이 카페 안을 구수하게 물들인다.





중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현재까지 이곳에서 34년 넘게 ‘경기 의료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경동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가게를 팔아치워야 하나? 아니면 이곳을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바꿀까?’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박대표는 여행을 하면서도 늘 그런 생각으로 가슴이 착잡했다.

결단을 내렸다. 싸리재 거리를 살릴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친지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지난 30일 개관식을 시작으로 소박한 카페를 열게 되었다.

“배다리와 신포동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올 5월에 공사를 시작했지요. 이렇게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소통공간을 만든 겁니다.”

문밖에는 ‘싸리재’와 ‘경기의료기’라는 간판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의료기를 사러 잊지 않고 더러 찾아오십니다. 공사하는 동안 그분들이 너무 아쉬워해서 카페 한쪽에 물건들을 그대로 놔뒀어요.” 30여 년의 세월을 접기에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는 듯 카페 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쓸쓸하다.





카페 안은 정갈하게 정돈된 한옥 거실처럼 편안하고 친근하다.

주방 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안채는 어릴 적 뛰놀던 앞마당처럼 정겨움이 가득하다.

카페 2층 천장에는 당시 상량식 때 써놓은 한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소화5년 4월’ 

“소화5년은 1930년입니다. 그때 지은 것이지요. 파인 벽을 보면 당시 흙과 지푸라기를 사용해서 지은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공사할 때 골격인 뼈대와 흙벽은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대문, 창문, 문틀, 벽돌 등 대부분 재활용을 했어요. 또 친지들이 소품들을 기부도 했고요.”







빛바랜 선조들의 사진과 누렇게 변한 고서(古書)들, 옛 신문으로 도배한 흙벽, 고급 카펫보다 더 아늑한 마루바닥, 옛 창틀...카페의 실내에서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낡은 옛 대문을 그대로 활용한 탁자의 울림에 문고리가 풍경처럼 살짝 흔들린다.

화장실 문고리와 천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그동안 모아온 3,000여장의 레코드판과 턴테이블까지 ‘싸리재’는 개인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2층 데크에는 1층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위에서 보이는 1층의 그림 같은 작은 풍경은 흑백시절의 추억과 그리움들이 되어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다.






박대표는 커피를 건네며 말한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커피를 대접하고 싶어서 질 좋은 원두를 바로바로 손으로 직접 갈아서 사용해요. 향 좋죠? 저희 집은 대나무에 9번 구운 자죽염과 유기농 설탕과 계피를 손님께 물어보고 취향에 맞게 넣어드리는데 모두 맛있다고 합니다. 오미자와 유자, 구곡미수가루도 모두 유기농을 쓰고 있어요.”

“인문학을 접목시킨 문화소통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바람은 이 거리가 문화의 거리가 되는데 초석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싸리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그의 웃음소리가 싸리재를 포근하게 감싼다.


박영희 객원기자 pyh606101@naver.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