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미쓰 리 영종도의 마당발, 이정자 할머니
영종도에서 ‘미쓰 리’를 모르면 간첩이다. “미쓰 리요? 좀 기다리시면 오토바이타고 지나갈 텐데......아, 저기 오시네요.” 미쓰 리가 살고 있다는 동네 어귀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미쓰 리 집을 물었다. 젊은 여자를 찾았지만 내 눈앞엔 할머니 한 분이 백발을 휘날리며 오토바이에서 내리신다. “뭣하러 왔어? 오토바이 타는 게 뭐 대수라고?” 4층 건물 제일 꼭대기가 할머니집이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하루에 수십 번 오르내리신다니 참으로 축복받은 관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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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차편이 없잖수? 지금이야 좀 괜찮은디... 그전엔 버스 기다리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디 얼마나 징그럽소? 그래서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녔지. 아무 때나 움직일 수 있으니 겁나게 편하고 좋아~” “내 속을 누가 알까? 힘들고 나쁜 일이 있음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섬 한바퀴를 도는 거야. 바람 한 점 쐬고 오면 싸악 잊어 버리재.” 25년 무사고 오토바이 베테랑 이정자할머니가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진 이유다. 할머니의 어투에 전라도 사투리가 들려 고향이 전라도냐고 묻자, 충청도가 고향인 할머니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게 된 살아온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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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엘리트다. 83세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한 다음해에 결혼을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노처녀가 우리집으로 시집왔네."라고 하시더란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당시엔 고등학교까지 공부하는 여자들은 드물었다. 처녀들 대부분이 18세 전에 결혼하였던 터라 할머니는 노처녀였단다. 노처녀가 시집왔다며 밉게 본 시어머니의 구박은 청양고추처럼 매웠다.
할머니는 자유연애결혼의 선두주자다. 할머니의 친정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 나온 엘리트였다. 고위공직에 있었던 아버지는 6.25전쟁 때 신분의 위협을 느껴 광주로 피난을 가신다.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피난 온 할머니는 이곳에서 남편을 만나 뜨겁게 사랑을 한다. 당시의 연애결혼을 한 사람은 동네에서 할머니 밖에 없었단다. 할머니는 산아제한의 선구자다. 당시 루프를 시술한 덕에 현재 두 명의 아들만 두셨단다. 할아버지는 동대문에서 커다란 포목점을 하였다. 사랑은 잠시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패물을 가져가 노름을 하기 일쑤였고 전당포에서 패물을 찾아오는 것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여자에 빠져 집을 나가 수 십년간 딴살림 하던 할아버지는 병이 들자 본처에게 찾아와 병수발을 들게 하다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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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별명이 ‘미쓰 리’인 이유는 젊어서 신랑없는 생활을 하다보니 주변에서 “미쓰리~”라고 불렸단다. 여자에 미쳐 나간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는 동대문 포목점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옷가게에 외상을 주면 여자라고 깔보며 돈을 떼먹기 일쑤였단다. 남자 없이 혼자 산다는 소문에 할머니의 돈을 떼먹는 집이 늘자, 할머니는 독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안주면 멱살을 잡고 흔들었어. 남자 없이 나 혼자 살아야 하는데 어떡해?” 이때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 효과가 더 컸단다.
독하게 번 돈으로 할머니는 두 아들을 공부시켜 의사와 목사로 훌륭히 키웠다. 게다가 학비가 없어 공부를 포기해야했던 야간대 여학생에게 학비를 4년간 대주기도 했다. 집에 와서 간단한 설거지를 해주는 대가치고는 큰 비용이었다. “지금도 가끔 찾아와. 대학 졸업시켜줘 고맙다구. 그런데 신랑을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보태주지 못해 가슴이 많이 아퍼.” 할머니의 오지랖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옷을 만들어 주는 일을 수십년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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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고 일본어, 영어도 수준급이다.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 미쓰 리가 빛 바랜 일본어책과 사주책을 펴며 열공하는 이유다. 멋쟁이할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고민상담사를 자청한다. “속상해 죽겠어~.신랑이 아 글쎄......” 동네 주민 최연씨는 속상한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할머니를 찾는단다. “아이고, 우리 멋쟁이 미쓰 리는 20대랑 대화해도 다 통해. 유행어도 얼마나 많이 알고 유식한데......”최연씨는 할머니 자랑이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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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것과 비교하지 마라. 내 것이 최고다 생각하고 만족하고 살아.” 오늘의 상담은 ‘현실에 만족하라.’라는 화두로 끝났지만 최연씨는 수다를 떠니 속이 후련하단다. “그려. 또 속상한 일 있음 언제든 와. 잉?” 할머니는 최연씨 어깨를 두드려주곤 오토바이를 타고 쌩~사라지셨다. 당신이 들었던 세상의 힘든 삶의 넋두리를 바다에 훌훌 던지러 바닷가로 향하셨나보다.
이현주 객원기자 o7004@naver.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