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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도서관에서 만난 세계챔피언, 박지현 선수

 

 

"두려움도 잊게하는 에너지, 그게 열정이죠"
도서관에서 만난 세계챔피언

 

지난 8월, 세계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무사히 지켜낸 박지현 선수(여. 28. 인천 대풍체육관 소속). 이번에는 링이 아닌 무대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그녀가 속한 대풍체육관(서구 석남동)을 찾아갔다. 내년 3월 시합을 앞둔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내뿜었지만 강연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그 수줍은 미소 속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숨겨진 챔피언, 박지현 
약속시각보다 2시간 먼저 도착한 체육관. 기다리면서 내부를 살펴봤다. 벽에는 그녀의 소식이 담긴 신문스크랩이 가득했다. 8년간의 선수생활 중 6년 동안 챔피언이었던 그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어려서 탁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녀는 체육특기생으로 인천대학교에 입학했다. 친구 따라 우연히 들른 대풍체육관에서 권투를 만났고, 타고난 운동신경에 노력을 더해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12차 방어에 성공했다. 비인기 종목이고, 활성화되지 않은 여자권투계에서 챔피언으로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했던 인고의 시절을 빼면 그녀의 ‘허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누가 알까, 후원자를 만나지 못해 경기주선이 이뤄지지 않아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기 직전까지 갔었다는 걸. 스포츠스타라면 당연한 국민적 관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항상 자신보다 체급이 높거나, 전적이 화려한 선수들과 맞붙어 힘든 경기를 이어왔다. 관장님을 통해 들어보니 지치지 않는 그녀의 돌진에는 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기사들을 읽다 보니 더욱 궁금해져만 갔다. 그때였다. “일찍 오셨네요.” 누군가 짧은 한마디를 던지며 들어왔다. 그녀는 사진과 얼굴을 비교할 틈도 없이 서둘러 운동할 채비를 갖추러 탈의실로 들어갔다. 연습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약속한 시각을 기다렸다.

 

 

 


줄넘기로 몸을 덥힌 그녀는 링 위에서 쉐도우 복싱을 계속했다. 가상의 적을 상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이 정말 진지해서 실제 경기를 연상케 했다.

 

 

 


추운 체육관이었지만, ‘훅! 훅!’ 기합을 내지르며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몸이 더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이것이 세계챔피언의 기운인가?’ 주변에는 덩치 큰 아마추어 선수들이 여럿 있었지만 작지만 강한 그녀의 기합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터뷰 먼저 할까요?
연습이 생각보다 길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그녀가 먼저 인터뷰를 요청했다. ‘셀프취재를 하며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나?’

기사를 읽었던 탓에 필요 없는 질문은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참 행복해 보이세요. 제가 제대로 봤나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그럼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이어서 권투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묻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놀라운 대답들이 돌아왔다. 기합을 내지르던 모습과는 다르게, 조용한 그녀의 대답.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목표만을 생각할 뿐, 꾸밈도 허세도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오로지 목표에만 몰두한 사람의 의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번 강연, 참 훈훈하겠는걸’

 

강연 당일, 부평 기적의 도서관

 

 

 

 

휴먼라이브러리는 부평 기적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연이다. 말 그대로 ‘사람이 책이다. 사람에게 배운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12월 15일 강연의 주제는 “챔피언, 열정과 노력으로 나를 채우다”

 

 

 

 

이날 강연은 토크쇼형식을 빌렸다. 사회를 맡은 자원봉사자들.

 

 

 

 

소개를 받으며 인사하는 박지현 선수. 이날 박 선수를 처음 본 청중들은 모두 의아했다. “정말 저 날씬한 아가씨가 세계챔피언 맞아?”

 

 

 

 

멋진 음악과 함께 시작한 소개 동영상이 끝나자.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권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의 과정, 어려웠던 점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의 주인공은 꼬마 아가씨.

 

 

 

 

“음……저기……시합 끝나면 멍들텐데……왜 지금은 안 그래요? 근육은…… 어디 있어요?” 순간 강연장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시합 전 얼굴에 바셀린을 바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멍이 적게 들고, 며칠 지나면 사라진다고 대답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박 선수, 순수한 질문 덕분에 세계챔피언을 둘러싸고 있던 긴장감이 날아가 버렸다.

 

 

 

 

안타까운 국내 여자권투계의 현실을 듣고, 아이를 안고 계신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세계선수들과 경기하려면 외국도 나갈 텐데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나라처럼 열악하나요?” 많이 다르다고 대답하는 박 선수. 타이틀을 가진 선수에 관한 관심과 사랑도 다르고, 운동하는 환경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 밖에도 많은 질문이 오갔다. 태권도선수가 되겠다는 딸에게 조언을 구하는 어머니. 권투선수가 아닌 여자로서 결혼계획을 묻는 아가씨. 불량배에게 맞지 않는 데 필요한 싸움지식을 묻는 고등학생. 그녀는 “싸움은 피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답했다. 질문이 오가면서 그녀와 청중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열정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내렸다.
“두려움마저도 잊을 수 있도록 하는 힘, 그게 열정이죠.”

 

 

 

 

강연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으러 무대로 올라가던 아이들은 챔피언벨트를 보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언니, 이거 한번 해봐요.”, “나 한번 해봐도 돼요?”

 

 

 

 

우여곡절 끝에 글러브의 주인이 정해졌고, 벨트는 그녀가 품에 안았다. 글러브를 낀 아이의 표정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 싸인 받고 싶어!”, “제 이름도 써주고요, 언니 전화번호도 써주세요” 기념사진 촬영 후, 뒤늦게 세계챔피언과 친해진 꼬마 아가씨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행복하지만 아쉬운 발걸음
귀여운 꼬마들 덕분이었을까? 그녀의 힘든 시절과 그동안의 상처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덧칠해지는 듯 했다. 사실 12차 방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동안 단지 12번의 방어만이 존재했을까? 힘든 사정으로 포기할 수도 있었던 순간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강연자도 행복하고 청중도 즐거운 강연이었다. 하지만 8년간 박 선수가 헤쳐 온 난관에 대한 보상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사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프로선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우리가 얻는 힘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온통 연예인권투선수에만 집중된 매스컴이 유난히 야속하게 느껴졌다. 문득 “홍보해줘서 오히려 고맙다.”라고 말하며 웃던 챔피언의 모습이 떠올라 생각을 멈췄다.

 

이제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 챔피언의 자리를 입증하기위한 지명방어전을 묵묵히 치러나가고 있는 그녀. 13차 방어라는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내년 3월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그녀의 13차 방어전이 열릴 예정이다. “참석해주시면 좋아요. 못 오시더라도 바쁘신 분들은 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큰 힘이 될 거에요”라고 말하는 세계챔피언.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김상호 청년기자 reporterk35@gmail.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