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도 잊게하는 에너지, 그게 열정이죠"
지난 8월, 세계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무사히 지켜낸 박지현 선수(여. 28. 인천 대풍체육관 소속). 이번에는 링이 아닌 무대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그녀가 속한 대풍체육관(서구 석남동)을 찾아갔다. 내년 3월 시합을 앞둔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내뿜었지만 강연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그 수줍은 미소 속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숨겨진 챔피언, 박지현
어려서 탁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녀는 체육특기생으로 인천대학교에 입학했다. 친구 따라 우연히 들른 대풍체육관에서 권투를 만났고, 타고난 운동신경에 노력을 더해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12차 방어에 성공했다. 비인기 종목이고, 활성화되지 않은 여자권투계에서 챔피언으로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했던 인고의 시절을 빼면 그녀의 ‘허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기사들을 읽다 보니 더욱 궁금해져만 갔다. 그때였다. “일찍 오셨네요.” 누군가 짧은 한마디를 던지며 들어왔다. 그녀는 사진과 얼굴을 비교할 틈도 없이 서둘러 운동할 채비를 갖추러 탈의실로 들어갔다. 연습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약속한 시각을 기다렸다.
기사를 읽었던 탓에 필요 없는 질문은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참 행복해 보이세요. 제가 제대로 봤나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그럼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이어서 권투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의지를 묻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놀라운 대답들이 돌아왔다. 기합을 내지르던 모습과는 다르게, 조용한 그녀의 대답.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목표만을 생각할 뿐, 꾸밈도 허세도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오로지 목표에만 몰두한 사람의 의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번 강연, 참 훈훈하겠는걸’
강연 당일, 부평 기적의 도서관
휴먼라이브러리는 부평 기적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연이다. 말 그대로 ‘사람이 책이다. 사람에게 배운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12월 15일 강연의 주제는 “챔피언, 열정과 노력으로 나를 채우다”
이날 강연은 토크쇼형식을 빌렸다. 사회를 맡은 자원봉사자들.
소개를 받으며 인사하는 박지현 선수. 이날 박 선수를 처음 본 청중들은 모두 의아했다. “정말 저 날씬한 아가씨가 세계챔피언 맞아?”
멋진 음악과 함께 시작한 소개 동영상이 끝나자.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권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의 과정, 어려웠던 점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의 주인공은 꼬마 아가씨.
“음……저기……시합 끝나면 멍들텐데……왜 지금은 안 그래요? 근육은…… 어디 있어요?” 순간 강연장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시합 전 얼굴에 바셀린을 바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멍이 적게 들고, 며칠 지나면 사라진다고 대답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박 선수, 순수한 질문 덕분에 세계챔피언을 둘러싸고 있던 긴장감이 날아가 버렸다.
안타까운 국내 여자권투계의 현실을 듣고, 아이를 안고 계신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세계선수들과 경기하려면 외국도 나갈 텐데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나라처럼 열악하나요?” 많이 다르다고 대답하는 박 선수. 타이틀을 가진 선수에 관한 관심과 사랑도 다르고, 운동하는 환경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 밖에도 많은 질문이 오갔다. 태권도선수가 되겠다는 딸에게 조언을 구하는 어머니. 권투선수가 아닌 여자로서 결혼계획을 묻는 아가씨. 불량배에게 맞지 않는 데 필요한 싸움지식을 묻는 고등학생. 그녀는 “싸움은 피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답했다. 질문이 오가면서 그녀와 청중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열정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내렸다.
강연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으러 무대로 올라가던 아이들은 챔피언벨트를 보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언니, 이거 한번 해봐요.”, “나 한번 해봐도 돼요?”
우여곡절 끝에 글러브의 주인이 정해졌고, 벨트는 그녀가 품에 안았다. 글러브를 낀 아이의 표정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 싸인 받고 싶어!”, “제 이름도 써주고요, 언니 전화번호도 써주세요” 기념사진 촬영 후, 뒤늦게 세계챔피언과 친해진 꼬마 아가씨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행복하지만 아쉬운 발걸음
강연자도 행복하고 청중도 즐거운 강연이었다. 하지만 8년간 박 선수가 헤쳐 온 난관에 대한 보상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사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프로선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우리가 얻는 힘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온통 연예인권투선수에만 집중된 매스컴이 유난히 야속하게 느껴졌다. 문득 “홍보해줘서 오히려 고맙다.”라고 말하며 웃던 챔피언의 모습이 떠올라 생각을 멈췄다.
이제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 챔피언의 자리를 입증하기위한 지명방어전을 묵묵히 치러나가고 있는 그녀. 13차 방어라는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내년 3월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그녀의 13차 방어전이 열릴 예정이다. “참석해주시면 좋아요. 못 오시더라도 바쁘신 분들은 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큰 힘이 될 거에요”라고 말하는 세계챔피언.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김상호 청년기자 reporterk35@gmail.com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
'통하는 인천 > 인천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거운’ 삶 이기는 ‘가벼운’ 웃음. 영화감독 육상효 (0) | 2013.01.10 |
---|---|
해리포터 학교를 꿈꾸는 김택수 마술사 선생님 (3) | 2012.12.20 |
보자기공예가 조옥해 씨 (0) | 2012.12.18 |
포토저널리스트 김성환 '인천 사진기(記)' (0) | 2012.12.13 |
엔돌핀 팍팍 선사하는 임종성 치과의사 (0) | 2012.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