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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영종도 ‘세월낚시’ 주인장의 만화 인생 30년


세월에 구름 가듯 ‘여유’를 팝니다

영종도 ‘세월낚시’ 주인장의 만화 인생 30년


사람들이 머리 들어 웃는다. 그동안 땅만 보며 걸었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사람들이다.

고개 들어 위를 볼 수 있다는 건 삶의 여유가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에게 위를 쳐다보며 가슴 펼 여유를 주는 가게, 바쁜 현대인들에게 여유 한 점 파는 가게가 있다.


중구 영종도 인천공항 북측 유수지 공원에 낚시 용품과 커피, 음료수를 파는 매점이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다른 매점과 달리 이곳을 들러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엔 함박꽃이 핀다.

한창기(50세), 이경애(51)씨가 운영하는 ‘세월낚시’에는 특이한 작품이 손님을 맞는다.

갯지렁이, 음료수, 커피, 생수 등을 파는 매대 위에 인생을 풍자한 삽화그림들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세상살이 공감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다가 그림을 본 사람들의 입가가 샐쭉 올라간다.






극장 간판그림을 배우기 위해 가출하다.

삽화그림을 그린 한창기씨는 인천공항 외곽 보안요원이다. 쉬는 날이면 부인의 가게를 돕는 자상한 남편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미술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 그가 사생대회만 나가면 상을 휩쓸었지만 부모님은 그가 붓을 드는 것을 싫어하셨다. 배곯기 딱 좋은 그림쟁이가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하여 용산에 있는 극장 앞 영화간판을 접하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화려한 색감의 영화간판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부모님 몰래 가출하여 무작정 용산극장을 찾아가 견습생을 자청했다. 미술실 쪽방에서 잠을 자면서 영화 시작 전 바구니에 오징어와 땅콩을 판매하며 간판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개월이 지나 정식으로 미술실에서 간판 일을 배우기 시작하자 문득 부모님께 안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편지 봉투에서 주소를 알게 된 부모님은 한창기씨를 다시 시골로 데리고 갔다.







시골에서 병역을 마친 후 충무로 인쇄소에서 미대생 졸업작품 표지 일과 호암갤러리 포스터 작업일을 시작한다. 미대생의 졸업작품을 도울 때에는 실컷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이 부러워 눈물을 훔치곤 했다. 인쇄소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솜씨를 눈여겨보았던 거래처 직원이 펑크난 작가의 삽화원고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인쇄소 일을 마치고 밤 늦게 삽화를 그렸지만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그가 붓을 드는 것을 하늘은 원하지 않았을까? 충무로 일대 인쇄소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인소개로 이곳 영종도에서 낚시 용품 장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늦깎이 결혼식을 올려 현재 초등학교 4학년 학부모인 그는 밤마다 그림일기를 쓴다.

결혼하면서 시작된 그의 그림일기는 현재 9년째 계속이다. 9권의 그림일기장엔 그의 가족이야기, 회사 이야기가 묵은지처럼 곰삭고 있다.







세월이 좀 먹나요? 쉬었다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그의 그림속 주인공은 한창기씨 자신이다. 그림을 통해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고 싶었단다. “책을 읽다보면 속담이나 고사성어를 마음에 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세상 사람들에게도 알리고도 싶구요. 그런데 딱딱한 글로 표현하면 얼마나 고루하겠어요?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해서 손님들에게 알리는 게 전 즐겁습니다.” 한창기씨는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말과 행동이 느리다. 그렇지만 느림이 여유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갯지렁이 좀 주세요.” 부인 이경애씨는 찾아온 손님에게 입질이 잘 오는 갯바위를 설명해준다. “여기 선녀바위 해수욕장이 어디죠?” 영종도 초행길인 길손이 길을 묻는다. 속 시원한 길안내 한바탕에 맛집 소개는 덤이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오지 않을까요? 전 그냥 목마른 사람에겐 물을 팔고 길 모르는 사람에겐 길을 알려주죠. 손님에게 속이지 않고 친절하게 살다보면 복이 오겠죠. 뭐......” 부창부수다. 느리지만 선한 웃음이 매력적인 부부다.



한창기, 이경애 씨 부부



“여기에 이런 그림이 있는 줄 몰랐네요. 너무 재미있어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신데요? ”

간이매점에 들른 손님들은 이렇게 말하고 껄걸 웃으며 연실 “재밌다. 재밌어~.”를 연발하며 매점문을 나선다. 조금 전 굳은 얼굴로 들어왔던 같은 사람들이 맞나 싶다.

한창기씨는 바로 뒤 공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봄내음이 짙다. 자연에서 급조한 연필이 이내 봄을 쓱쓱 그려낸다.





눈높이에 맞게 그림을 전시하면 좀 더 사람들이 잘 보지 않겠냐는 질문에 한창기씨는 대답한다.

“보면 보는 거고 안 보면 마는 거지요. 맨날 땅만 보고 걷고 사는데 언제 위를 올려다 보겠슈? 우리 집에 와서나 위를 쳐다보며 가슴 펴 보라구...... 이렇게 걸었죠. 인생 뭐 있나요? 세월 속 한 점으로 살다가는 거죠. 쉬었다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사람들은 뭐 그리 바쁘다고 땅만 보고 총총걸음을 걸으며 사는지......”

세월에 물 흘러가듯 살아온 주인장 마음을 훔쳐보곤 너털웃음 한바탕 웃고 마음을 비운다.


이현주 객원기자 o7004@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