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닿을 수 없어,
마음을 붙잡는 섬
여름이 파랗게 익어 가면 마음은 어느덧 길을 찾아 나선다. 덕적도 바다에는 굴업도, 문갑도, 울도, 백아도가 보석처럼 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이미 세상에 들켜버린 섬도 있지만 아직 비밀스레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섬도 있다. 덕적도 남서쪽 끄트머리에 오롯이 핀 백아도가 그렇다.
글. 정경숙_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성환_포토저널리스트
남서쪽 바다 끝에 비밀스레 숨다
이른 아침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덕적도 건너 백아도로 가는 쾌속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희뿌연 안개꽃이 온 바다를 뒤덮었다. 아차, 싶다. 좋은 날씨에 욕심내어 여행날짜를 하루 미룬 터였다. 하지만 짙은 해무도 365일 가운데 허락된 외출에 일렁이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다. 드디어 여객선이 속도를 내고 흰 물띠가 쪽빛 융단을 두 쪽으로 가르며 길게 이어진다.
깊디깊은 ‘큰물’ 덕적도 바다에는 굴업도, 문갑도, 울도, 백아도가 보석처럼 뿌려져 있다. 덕적도와 굴업도는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들켜버린 지 오래지만, 아직 보일 듯 말 듯 속살을 감추며 애태우는 섬이 있다. 백아도다. 섬은 서쪽으로 80km 떨어져 있는 덕적도에서도 남서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다. 가는 배도 완행이다.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고 섬을 건너고 건너야만 한다. 그나마 지난해 차도선형 여객선 나래호가 취항하면서 뱃길이 40분 정도 가까워졌다. 공교롭게도 그 섬과 세상을 잇는 나래호의 송진호 선장(63)은 백아도가 고향이다. 27년간 바다와 동고동락하다 3년 전 퇴직했지만 그 연을 놓지 못하고 다시 키를 잡았다. 노장은 비보다 바람보다 무섭다는 해미 앞에서 신중하면서도 노련하게 바다를 가로지른다.
다행히 안개꽃이 걷히고 그 사이 점점이 박힌 섬들이 수채화로 곱게 피어난다. 저 멀리 선단여가 보인다. 애달픈 전설이 빚어낸 바위섬은 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변하며 마술쇼를 부른다. 백아도가 머지않았다.
여름이 반짝반짝 빛나던 그 섬
3시간 넘게 해미를 가르고 파도를 헤쳐 섬의 품에 안겼다. 백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배알’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그 후 섬의 모양이 흰 상어의 이빨 같다하여 백아도라 불리었다. 섬은 처연하리만큼 고요하다.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근 섬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 ‘1박2일’을 찍으면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지는 못했다.
“방송에서는 백아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이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저기가 그 유명한 기차바위예요. 등산로를 오르거나 바닷가를 따라가면 수려한 풍광이 연이어 펼쳐집니다.” 백아도내연발전소의 차준덕(50) 소장은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작 백아도를 저만치 떨어뜨린 것이 못내 섭섭하다. 섬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 듯 그의 최신형 스마트폰에는 백아도가 배경화면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섬은 세 개의 해변을 품고 있다. 섬 가운데 초승달 모양으로 뻗은 긴긴 마을 해변은 갯벌이지만 모래결이 보드랍고 경사가 완만해 물참에 물놀이하기 좋다. 또 조개가 드글드글해 잦감엔 빗자루로 쓸듯 조개를 주어 담을 수 있다. 옛 백아선착장을 곁에 둔 내연발전소 앞 해변은 아담하지만 물빛이 아름답다. 서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눈에 닿기만 해도 청량감이 끼쳐온다. 선착장에서 고기잡이배를 얻어 타고 해안을 따라 돌게 된 건 행운이다. 한편에는 하늘과 하나된 수평선이 한편에는 기암절벽과 바위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동해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비장미는 없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파고든다. 저기, 바위에서 한가로이 볕을 즐기던 가마우지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높이 날아가 버린다. 고른 한낮, 하늘 위에선 여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발길은 떠나도 마음은 머물러
총면적 1.76㎢ 등산로를 따라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에는 25가구 40여 명이 너나들이하고 있다. 예전에 큰 마을이라 불리던 발전소마을에 11가구가 작은 마을이라 불리던 보건소마을에 14가구가 오붓이 살아간다. 큰 마을 작은 마을이 뒤바뀐 셈이다. 하지만 섬도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만해도 100여 가구가 섬에 살았어. 우럭, 농어, 광어, 놀래미를 주워 담을 정도로 풍년이었지.” 섬에서 나 섬에서 살아 온 이효남(60) 할아버지가 어릴 적 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뭍으로 떠났고 섬에서 유일한 초등학교도 사라졌다. 외로이 남은 어르신들은 자식에게 나눠 줄 무와 배추를 키우는 소일거리를 하며 욕심 없이 살고 있다. 아무리 물고기밭이 지천인들 이제 고기 잡을 사람이 없다.
살차게 쏟아지던 햇발이 누그러지고 어느덧 육지로 가는 배가 닻을 내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섬을 떠나는 사람들과 주민이 작별인사를 하느라 조용했던 섬이 시끌벅적하다. 그들이 떠나면 다시 고요가 흐르겠지.
7년 만에 백아도를 다시 찾았다는 한 방문객은 말한다. “세상은 이 아름다운 섬을 왜 모를까요. 백아도로 곧장 가는 배가 생겨서, 이곳이 지나가는 섬이 아닌 찾아 머무르는 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덕적도에서도 서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다다르는 머나먼 섬. 그 섬이 주는 단절감이 못내 아쉬움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덕적도 바다에 박힌 보석들을 찾아서
덕적도 주변에는 8개의 유인도와 33개의 무인도가 올망졸망 가족처럼 떠 있다. 그 섬들을 찾아 떠난다.
●소야도 덕적도에서 단 0.5㎞ 거리에 있는 가까운 섬. 그래도 배를 한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에 아직 티 없이 맑은 자연을 품고 있다. 섬에는 약 700m에 이르는 은빛 모래사장을 품은 떼뿌루해변이 있다.
●굴업도 서섬과 동섬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섬은 목기미해변으로 연결돼 있는데, 물이 차오르면 물에 잠겨 사라져 하나의 섬을 두 개의 섬으로 나눈다. 대표해변은 큰말해변이다.
●문갑도 섬 전체가 전형적인 소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섬의 모습이 선비들이 책을 읽는 책상의 문갑 같다하여 문갑도로 불린다. 산을 병풍삼아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진 문갑해변과 한월리해변을 품고 있다.
●울도 뭍에서 멀어서 울면서 들어가고, 나올 때는 훈훈한 인심에 떠나기 섭섭해서 울고 간다는 울도.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민어, 조기, 새우잡이가 한창이었고 호황일 때는 파시가 열렸다. 섬 전체가 낚시터라 고기를 잡으며 고독을 즐기기 딱이다.
●지도 남단의 민가 주변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소나무 군락이 드리워지고, 해안 암벽을 따라 소사나무가 우거져 있다. 덕적군도가 다 그렇듯 섬 전체가 천연 낚시터로 우럭·노래미 등이 지천에 널렸다.
여행 Tip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면 1시간 정도 후면 덕적도에 도착한다. 이후 덕적도 바다역에서 문갑도, 백아도, 울도, 지도 각 섬을 잇는 배 나래호를 탄다. 백아도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려고속훼리, www.kefship.com 1577-2891). 백아도에는 민박집이 네 집 정도 있으며, 섬으로 가기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백아 섬마을 민박 834-7628, (이장 장성자). 한편 섬투어(seomtour.kr, 761-1950)는 덕적도를 지나 문갑도·굴업도·울도·지도·백아도 등 인근 섬을 여행하는 1박2일 여행코스를 선보이고 있다. 요금은 백아도행이 일반 7만6천원, 인천시민은 5만4천원이다.
자료 : 굿모닝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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