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현재진행형 탁구의 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고령 선수, 인천장애인체육회 김광진
2012 런던 장애인올림픽이 끝이 났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9, 은메달9, 동메달 9개로 세계 12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탁구는 말 그대로 ‘효자종목’이다.
장애인올림픽에서 탁구가 ‘금 밭’을 일구고 있는데 있어 그 역사의 시초였고, 지금도 선수로서 현재진행형의 장애인 탁구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랜드슬램 달성, 올림픽 4회 출전, 최고령 현역 선수, 일반 대회 출전 우승 등 갖가지 기록을 보유한 김광진 선수이다.
탁구의 신은 지금도 갖가지 기록 경신 중
김광진 선수의 집에 보관된 메달의 수는 300여개가 넘는다. 이것도 이사나 태풍 피해 등으로 잃어버린 것들과 오래되어 어디에 보관했는지조차 모르는 메달들은 뺀 숫자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 장애인올림픽 단식 금메달이다. 올림픽 첫 메달인 만큼 액자에 넣어 걸어 두었는데 그 옆에는 대통령 훈장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는 서울 올림픽 단식 금메달에 이어 12년 후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메달 권 밖의 성적을 기록한 올림픽을 포함해 올림픽 4회 출전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올림픽뿐 아니라,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까지 모두 1위를 차지해 탁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반짝반짝한 금메달이 최고 수준의 실력을 말해준다면, 어마어마한 메달의 숫자와 희끗희끗한 그의 머리카락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의 나이 올해로 57세. 탁구를 시작한지도 30여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도 선수로서 각종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타이완오픈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했고, 얼마 전에는 2012 보훈 국제장애인탁구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선수 지도와 발굴에도 구슬땀을 흘리는 지도자
다섯 번째 올림픽이 될 수 있었던 런던 올림픽은 국가대표 선발 랭킹포인트에서 1점 차로 아쉬운 탈락을 했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출전권을 땄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다. 그는 현재 인천장애인체육회의 ‘찾아가는 생활체육서비스’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인적인 연습보다 선수 발굴과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동춘동 장애인체육관에서, 평일에는 중앙병원 탁구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또 곳곳을 찾아다니며 신인 선수 발굴에도 여념이 없다. 그의 실력과 유명세 덕분에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선수들은 줄을 선다.
홍광순 선수도 그의 자도 아래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따 냈고 올 10월에 있을 제3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홍 선수는 “김광진 선생님께 배우면 좀 다르긴 하죠. 한 번 봐주시는 것만으로, 또 연습 경기 한 번 해 주시는 것만으로 실력이 쑥쑥 늘어요. 그리고 그동안 이룬 업적만으로도 선수들에게 아주 긍정적인 자극을 주시는 분입니다.”라고 말하며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김 선수는 후배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면서 얻게 되는 보람은 자신이 직접 메달을 딸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훈련시켰는데 경제적 지원이 더 좋은 타 시도로 갑자기 떠나 버리는 선수들이 있어요. 장애인들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정이 쌓인 만큼 서운하고 섭섭하고 안타깝기도 하지요.”라고 말했다.
김광진 선수는 예전에 일반인을 가르치는 평범한 탁구장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 초기에는 그의 실력도 보기 전에 장애가 있는 그의 다리만 보고 수강료를 환불해 달라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실력이 소문나면서부터는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을 정도인 70여 명의 수강생이 모여들기도 했었다.
사실 김광진 선수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제자는 딸이었다. 김 선수의 딸은 현재 대한항공 소속 김경하 코치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탁구장에 드나들면서 탁구에 입문해 아버지를 빼닮은 승부욕으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선수로서의 마지막 꿈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김광진 선수는 자녀교육 때문에 고향에서의 환대를 뒤로하고 서울로 이사했고, 딸이 대한항공에 입단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영입으로 인천 장애인탁구 선수층도 이전보다 많이 두터워진 것이 사실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열심히 활약하면서도 또한 인천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후배에게 양보 좀 하라’는 주변의 권유로 포기한 경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경기가 있다. 바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제2의 고향, 인천에서 열리는 경기에는 선수로서 꼭 참가하고 싶다. 그는 마지막 은퇴 무대가 꼭 인천 아시안게임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더불어 성황봉송 주자로도 아시안게임에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금도 퇴근 후에 2시간씩 꼬박꼬박 탁구 연습을 하고 있고, 체력 향상을 위해서 가끔 등산도 갑니다. 몸은 늙어 가지만 마음은 아직 20대에요. 탁구 선수로서의 인생 꼭 인천에서 마무리하고 싶고, 제가 가장 잘 하는 탁구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김광진 선수는 4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성장하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탁구로 몸과 마음의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기자는 항상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노력한 것일까’하는 궁금증 말이다. 언제나 결론은 ‘유전과 노력 둘 다’라고 났지만, 유전과 노력의 비율이 정확히 5대5는 아닐 테고, 과연 그 비중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끝없는 의문이 계속됐는데, 김광진 선수를 만나보니 역시 타고난 것보다는 후천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유수경 객원기자 with0610@hanmail.net
자료 : 인천시 인터넷 신문
'통하는 인천 > 인천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골목 사이․다(多) ③ 율목동 (0) | 2012.10.02 |
---|---|
일자리와 나눔 정신 9년 기쁨떡집 이야기 (0) | 2012.09.26 |
30년 외길 인생 걸어 온 조각공예가 이철환씨 (0) | 2012.09.10 |
‘우리술빚기 동호회’의 추석맞이 ‘석탄주(惜呑酒)담그기’ (0) | 2012.08.30 |
인천시교육청 Wee센터 박영희 전문상담교사 (0) | 2012.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