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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인천의 노거수(老巨樹)를 찾아서


사람이 기억하는 나무, 나무가 기억하는 사람

인천의 노거수(老巨樹)를 찾아서


계절이 변해가는 순간은 정확히 언제부터 일까? 

날씨가 갑자기 뜨겁게 느껴질 때? 긴팔 옷에서 반팔 옷을 찾기 위해 옷장서랍을 정리하는 순간부터? 

계절의 변화를 사람의 옷차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나무를 통해 계절의 색을 찾는 순간들이 있다. 벚꽃나무의 꽃이 모두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푸르른 계절. 변하지 않고 인천에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과 나무들을 만나러 가보자. 


나무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장수동 은행나무

장수동 은행나무는 외관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나무다. 5개의 큰 가지가 손색없이 균형을 이루었으며, 전체적으로 나무의 형태가 둥근 수형을 보이고 있다. 잎이 나지 않은 은행나무의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면 복잡해서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를 높은 가치를 두지만, 장수동 은행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수동 은행나무 옆에서 차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에는 죽은 나뭇가지 하나 없었어. 그만큼 주민들이 관리를 잘 했지. 지금도 1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 여름에 한번하고, 늦가을에 한번. 옛날에는 여름만 되면, 여기서 더위를 피했지. 은행나무 아래에서 뿌리를 베개 삼아 누우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잎이 무성했어. 바람도 잘 불어서. 여름에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니깐, 옛날에는 정말 아름다운 나무였는데.”

현재 장수동 은행나무의 뿌리가 튀어나온 것이 없다. 복토작업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아래에서 여름날 단잠을 자던 추억. 장수동 은행나무는 가을에만 빛이 났던 은행나무가 아니었다. 





▶  장수동 은행나무는 소래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와 멀지 않는 곳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위치: 인천 남동구 장수동 63-6

인천시기념물 제12호 (지정일1992.12.09) 추정수령 800년

높이 30m,둘레8.6m



은행나무가 보는 풍경 계산동 은행나무

12시가 조금 넘은 초등학교 안. 점심식사를 끝낸 아이들이 학교 안을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600년 동안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도 아이들에 놀이터로 예외일수 없었다. 

이차은(부평초 4학년)양에게 나무에 대해 물었다. 머릿속에 암기가 되어 있는지, “600년 된 은행나무예요.”라고 말했다. 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 물으니, 3학년 때 미술시간에 이 나무를 그려보았다고,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조은영(부평초 4학년)양은 “600년 된 나무가 많지 않은데 신기해요.”라며 은행나무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계산동 은행나무는 본래 부평 도호부의 풍치수로 심어졌다고 한다. 학교 안에 부평 도후부때의 유적으로 선정비들이 같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가 되어 나무 주변으로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서부터 일제강점기를 넘는 긴 세월을 이겨낸 은행나무. 은행나무가 보았을 풍경이 변해간다.





주변정보 

▶ 학교 내에는 부평부사 중 선정을 베푼 부사들의 선정비들이 세워져 있다. 해방 이후에는 비석들이 마을 안, 다리로 쓰이거나 마을입구 안내판으로 사용돼 문화유산의 훼손이 심했다. 그러나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관리하면서 이 고장 부평부사들의 공적을 기리던 비석이 90여년 만에 옛 집무를 보던 곳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위치: 인천 계양구 계산동 943(부평 초등학교 內)

인천시기념물 제11호(지정일 1992.5.15일)/ 추정수령 600년

나무높이 25m, 둘레 10m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 신현동 회화나무 

회화나무 주변을 둘러싼 울타리 밖까지 거대한 녹음이 내려앉는다. 

예전에는 회화나무의 꽃피는 상황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 꽃이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 피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식이다.(회화나무의 꽃은 8월에 핀다.) 현재 회화나무 주변은 주택지로 변해 있었지만, 회화나무 아래에는 여전히 제단이 놓여 있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회화나무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잘 알지 못한다며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할 수 없이 회화나무 근처에서 채소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들은 회화나무에 대해서 잘 몰라요.”라고 하시며, 서먹하게 웃음을 지으셨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보는 곳이 좋다며, 신현 경로당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신현동 회화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30년 전에 큰 할아버지가 이곳에 오셨는데, 그때도 저 나무는 컸어. 정확한 나무나이는 알 수 없지. 500년은 족히 되었을 거라는 것 밖에는.” 신현동을 떠나신 적이 없다는 윤경씨(80세/ 신현동 거주)의 이야기다.





매년 5월 28일이 되면 회화나무 앞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5월 28일은 이곳 신현동 경로당이 생겨난 날로 경로당에서 제를 준비한다고 한다. 현재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가 아닌, 회화나무가 오래도록 이곳에서 동네를 보호하고, 인천시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날이 되면, 한번 와서 봐” 라고 어르신들이 말했다. 어르신들과 오래된 나무는 말없는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주변정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현동 회화나무는 뒤로는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어, 주택가 안에 작은 공원을 연출하고 있다. 

위치: 인천서구 신현동 131-7외 6필

천연기념물 제315호(지정일 1982.11.04) 추정수령 500년

나무높이 22m,가슴높이 둘레 5.3m, 뿌리목 줄기둘레7.9m, 가지는 동쪽으로12.6m,서쪽7.6m,남쪽 12.7m, 북쪽 11.8m로 퍼져있다. 


인천에는 자랑할 만한 노거수가 많이 있다. 크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인천의 땅에서 인천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백년세월의 푸르른 녹음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강나영 청년기자 quoifk@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