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 마을기업 공정무역 카페, ‘외할머니’
“할머니, 이디오피아 핸드드립으로 한 잔 주세요.” 이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주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고개가 갸우뚱 거려질 일이다. 할머니에게 커피 주문이라니, 그것도 이디오피아산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부평구 일신동, 일신시장 건너편에 자리한 ‘카페 외할머니’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카페 외할머니 외부 전경
카페 외할머니는 작년 7월 문을 열었다. 바리스타는 일흔을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 6분과 마흔 중반쯤의 아주머니 3분을 합쳐 총 9명이고 이들이 번갈아 가며 가게를 지킨다. 커피 가게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바리스타들은 어쩌다 카페에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서빙도 하게 됐을까.
▲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 바리스타
이곳의 대표인 김헌래 씨(44)는 2011년 11월 일신동의 등불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다. 동네에서 폐지를 모으며 살아가는 어르신을 자주 보고는 노인일자리와 지역사회 공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한 어르신이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취업교육과정의 하나인 바리스타 양성과정을 신청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 아내가 서울에서 공정무역커피 관련 일을 하고 있거든요. 진작부터 저도 커피와 인연이 좀 있었죠. 이참에 어르신들을 위한 카페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구요.” 절묘한 우연이다. 마침, 2012년 2월에 마을기업 공모가 있어 카페 이름을 정하고 계획을 구체화시켜 서둘러 지원을 했다. ‘외할머니’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 뜻을 담았다. 집 밖의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들의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가만히 읊조리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름이다. 이 카페와 참 잘 어울린다.
▲ 김헌래(44)대표
두근거리며 결과를 기다리다 4월, 드디어 마을기업에 선정이 됐고 지원금의 일부를 받았다. 원래는 철물점의 창고로 쓰이던 8평 남짓한 공간을 설계도도 없이 알음알음 내부공사를 해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췄다. 근처에 2층 대형 카페가 있었는데 얼마 못가 문을 닫은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꿋꿋하게 소정의 바리스타 교육을 마치고 7월에 정식으로 개소식을 치렀다. 벌써 8개월이 지났고 지난달에는 마을기업 2차 지원을 신청했다고 한다. 다행히 적자 운영은 아닌게다. 임대료, 재료비를 지출하고 인건비와 4대 보험료까지 제 때에 챙기고 있으니 카페를 만든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다.
▲ 사람을 위한 무역, 공정 무역 커피
▲ 로스팅 전의 생두
처음 몇 달은 아내가 일하는 곳에서 원두를 받아와서 운영을 하다가 작년 11월 정부의 예산 확보로 추가 지원을 받아 커피 볶는 기계를 구입한 후에는 김대표가 직접 생두를 볶아서 사용하고 있다. 공정무역을 통해 케냐, 동티모르, 탄자니아, 르완다, 이디오피아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착한 기업이니 만큼 재료도 착하다고 할 수 있겠다.
▲ 메뉴
착한 것이 또 있다. 가격이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는 2,500원, 그 외의 커피는 3,000원대, 더치커피 4,000원, 핸드드립 커피는 5,000원에 판매 한다. 할머니들이 유기농 재료로직접 만들어서 판매 하고 있는 식혜는 천원, 레몬차, 생강차, 모과차는 3,500원이다. 혹시 싸니까 맛이 좀 덜하지 않을까라는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외할머니 카페는 맛으로 승부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음료에 정성과 애정, 자부심을 듬뿍 담아 만들고 있어 다른 카페와는 맛이 또 다르다.
▲ 한글 교재가 빼곡한 책꽂이
김대표는 얼마 전 가게 뒤에 주택을 얻어 작은 공간을 더 마련했다. 지금은 동네 주민을 위한 커피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곳이 동네 사랑방이 됐으면 한다고 한다. 언제든 누구든 와서 편안하게 사용하고 쉴 수 있도록 할 생각 이다. 또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과 외국인들을 위한 한글 교육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게 한쪽 책꽂이에는 한글 교재가 빼곡이 꽂혀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동네와 지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동네 주민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늘 가득하다. 조금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가 생기도록 2호점을 열고 싶지만 자금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카페 외할머니는 일하는 사람들이나 찾아오는 손님들 모두에게 행복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라며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이 참 행복해 보인다.
▲ 송정숙 외할머니
“아휴, 내가 여기라도 나오니까 이렇게 화장을 해요.” 라며 환하게 웃는 송정숙 할머니(71)의 얼굴이 참 곱다.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교육을 받았다길래 어렵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왜 안 어려웠겠어요. 말도 마요. 처음에는 메뉴 외우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부 생소하잖아. 중간에 그만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 내가 못 할걸 한다고 했구나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신맛 단맛 쓴맛 구수한맛이 다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가장 좋아하고 여름에는 차가운 더치커피를 즐겨 마실 만큼 전문가가 됐다. 가족들이 지지 해주고 친척 형제들의 부러움을 받을 때면 어깨까지 으쓱거린다.
외할머니들은 교대 근무가 원칙이지만 레몬차, 모과차, 생강차, 식혜를 만들어야 하는 날이면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먼저 나와서 하루 종일 같이 만든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이 되는 것이다.
▲ 유기농 레몬차
일 때문에 왔다가 시간이 남아 잠시 커피를 마시러 들렀다는 이희자씨(충청도)는 "할머니가 있으니까 참 정겨워요."라며 어느덧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는다. 단골 손님의 나이대도 다양하다. 식혜를 먹으러 오는 초등학생부터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는 80대 노인까지 모두가 거리낌 없이 눈치 보지 않고 들를 수 있는 곳이 됐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근데 여기 나오면 시간도 보내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러니까 그게 진짜 행복한 거죠.” 아담한 가게 안에서 커피향기 보다 더 향긋한 웃음이 하루 종일 피어난다. 카페 외할머니의 푸근함과 소박한 행복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희망해본다.
Cafe 외할머니 인천시 부평구 일신동 90-26번지 032-517-8255 open:07:00~22:00
주란 청년기자 rri0217@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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