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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여행·명소

신문물의 통로 우각로(쇠뿔고갯길), 신여성길과 생애사길로 다시 태어나다

 

신문물의 통로 쇠뿔고개로(路)
신여성길과 생애사길로 다시 태어나다


인천 근대문화 역사의 근원지 동구의 우각로(牛角路). 우각로를 우리말로 하면 ‘쇠뿔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은 신문물의 통로였다. 개화기에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큰 길이었던 우각로는 바다 건너 들어 온 각종 신기한 물건과 많은 사람이 오가던 길이다. 이제 그 길엔 당시 개화인들의 자취와 신문물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쇠락한 구도심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다.


쇠뿔고갯길의 탄생
인천의 원도심은 한때 인천 근대 문화의 발아기와 융성기를 거친 곳이다. 하지만 도시가 외곽으로 팽창하면서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인천도시공사 관광사업본부가 쇠뿔고갯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낡고 페인트가 벗겨진 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사람사는 이야기, 역사로 남겨진 일화. 잊혀지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을 엮어 쇠뿔고갯길을 ‘신여성길’과 ‘생애사길’로 나누고 관광코스를 만들었다.
담당자 정소연 씨는 “쇠뿔고갯길은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도 그동안 낙후지역으로 남아있었어요. 저희는 그곳의 이야기를 모아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제 올해 하반기면 ‘인천길라잡이’(해설사)와 함께 탐방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신여성길
도원역 - 구)호레이스 알렌 별장 터 - 인천세무서 - 구)여선교사합숙소 - 창영감리교회/복지관 -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개항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선교사들을 통해 신식교육이 이루어졌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교육이 시작됐다.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여성의 경제활동도 시작되었다. 여성들의 삶이 달라졌다. 신여성의 탄생이었다.


현재의 인천세무서 자리는 감리교 남선교사들이 지내던 곳이었다. 담장하나 너머 보이는 파란지붕의 르네상스식 건물은 여선교사합숙소(시 유형문화재 18호)이다, 지금은 주말 청소년 교육장으로 쓰이고 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창영감리교회가 나온다.

 

 

 

여선교사합숙소

 

 


창영감리교회 바로 옆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 감리회 선교사인 G.H 존스가 세운 영화학교가 있다. 신식건물들 사이로 오래된 3층 건물이 눈에 띤다.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영화학교 본관이다. 인천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기독교 선교와 함께 여성계몽을 위해 지어졌다. 신여성을 키워낸 곳이었다. 한국 여성교육의 선구자 김활란도 영화학교 출신이다.
담 하나를 두고 시 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된 창영초등학교가 나온다. 인천지역 3·1만세운동의 근원지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영화학교 본관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달팽이 길’이라고 하는 좁은 지름길이 나왔다. 벽화로 꾸며진 벽을따라 오르면 어느새 ‘달과 가장 가까운 동네’라던 달동네에 다다른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던 당시 달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신여성길의 끝을 장식한다.

 

 

 

 

생애사길
생애사(生涯史)길이란 이름 그대로 주민들의 살아 온 그라고 지금 사는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사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삶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생애사길은 개별 관광코스이다.

 

 

 

 


이 길에서는 조용히, 천천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주민들과 마주치면 인사를 먼저 건네보자. 소중한 집과 골목을 관광지로 내어 준 주민들을 배려하는 건 센스~ 
(쇠뿔고갯길 안내 : cafe.naver.com/incheongil)


차지은 기자 minsable@hanmail.net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