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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고기잡이 아버지와 철모르던 아들이 부르는 ‘클라멘타인’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


아버지의 바다

고기잡이 아버지와 철모르던 아들이 부르는 ‘클라멘타인’


영종도는 섬이지만 현재는 두 개의 연육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 영종도는 배편 외에는 육지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영종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배가 오갔던 포구 ‘구읍뱃터’.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겨 쉽게 육지를 오갈 수 있지만 지금도 ‘구읍뱃터’는 영종과 동인천을 가장 빨리 이어주는 교통로다.

과거 어시장과 횟집이 즐비했던 뱃터는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지금은 횟집과 어시장은 사라졌다. 다만 몇몇 배 주인이 운영하는 작은 천막가게가 과거 상권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이정표로 남아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어부들이 어선보상을 받고 뭍으로 간 이곳에 지금까지 묵묵히 영종도 바다를 지키는 2대째 어부가족이 있다.





‘아버지’와 ‘바다’는 거기 있었다.

박형일 할아버지는 82세다. 영종도에서만 30년 이상 어부로 살아왔다. 아들 박재연씨(42세)도 아버지 뒤를 이어 바다를 낚는 어부다. 

“아이고, 남의 고기 한 점 먹으려면 내 고기 석 점을 내줘야 한다더니......휴우~ 힘드네.” 평생 바다에서 일했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는 파도와 싸우기엔 적잖은 나인가 보다. 새벽 조업을 마친 아버지는 한숨을 등에 업고 뭍에 오른다. 고부라진 등위로 삶의 무게가 무겁다.

아버지의 굽은 허리를 보자 아들 재연씨는 고개를 떨군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바다에 붙잡고 있는 자신이 미워서다. 

“작년 바다에서 아버지와 조업할 때였어요. 아버지께서 저를 못 알아 보시고 평상시와 다르게 자꾸 그물 올리는 행동만 계속하시는 거예요.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육지에 닿자마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뇌경색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지요.” 뇌경색을 앓고 계시는 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아들 돕겠다고 배에 오른다.





스무 살 시절부터 재연씨는 통발어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도왔다. 뱃일을 시작했지만 젊은 혈기는 바다에 나가는 게 즐겁지 않았다. 새벽에 물때를 맞춰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수 십 년간 힘들게 뱃일을 하는 아버지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바다에 나가는 것이 싫었다. 그 후 바다를 떠나 회사도 다녀보고 사업도 해봤지만 번번이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정치망 어업허가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에게 배를 타라고 권하지도 않았고 하던 일이 잘 안되어 고민하던 그에게 다시 바다로 돌아오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아버지의 통발을 걷어준 것도 재연씨였고 인생의 쓴맛을 본 후 다시 바다로 돌아와 정치망을 돌보기 시작한 것도 재연씨였다. 

아버지와 바다는 언제나 묵묵히 거기 있었다.  





향수냄새보다 비린내를 좋아하는 그녀

아침식사도 거르고 배에서 내린 시아버지를 위해 며느리는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게장이 전부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꽃게 다리를 뚝 잘라 시아버지에게 권하는 신정희(39세)의 애교에 밥상은 풍성해진다. 결혼 4년째 새댁 정희씨는 결혼과 동시에 바다에서 신혼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탄 배가 도착하면 밧줄로 배를 정박시키고 잡아온 해산물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어부의 아내요, 어부의 며느리다. 젊은 나이에 비린내 나는 생선의 내장을 갈라 말리고 가격 흥정하는 손님에게 덤 팍팍 줘가며 흡족한 미소까지 선물하는 그녀는 바다와 열애중이다.






“남편을 만난 건 친구 결혼식이었죠. 부끄럽게 다가와 데이트신청을 하더군요. 얼굴은 햇볕에 검게 그을려 웃으면 치아만 하얗고 몸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남편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비린내 때문에 먹고 사니 그 어떤 향수 냄새보다 좋네요. 호호호”

30대인 그녀는 향수보다 비린내가 좋단다. 한창 꾸미고 좋은 냄새 풍겨야할 나이에 장화와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그녀의 몸엔 바다 냄새가 가득하다.





“우리 며느리? 백점짜리지. 나무랄게 없어. 젊은 나이에 바닷바람 맞으며 궂은 일 다하고...... 안쓰러워.”

시어머니 조삼임(74세)씨는 정희씨의 든든한 후원자다. 천막 안에는 시어머니 조삼임씨가 아들과 남편이 잡아온 갯가재와 망둥어, 새우, 꼴뚜기, 꽃게를 선별하고 있었다. 수 십 년간 해오던 판매일은 이제 며느리에게 물려줬다.


“처음 어머니께 일 배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죠. 회사생활만 하던 저에게 바닷일은 쉬운 게 아니었죠. 고부갈등이요? 탁 트인 바다에서 일하는데 뭔 갈등이 있겠어요? 어머님이나 저나 섭섭한 점이 있으면 대화하고 바닷바람에 날리죠.” 정희씨는 정이 많아 딸처럼 자신을 챙겨주시는 어머님이 감사하단다.





지금 이 행복한 시간이 마지막은 아닐까?

아버지가 내렸던 그물에서 아들은 오늘도 물고기를 올린다. 

“아버지께 항상 고맙고 죄송한 마음뿐이죠. 제가 잘 풀렸으면 아버지가 지금까지 바다에 나갈 이유가 없으시잖아요. 저 돕겠다고, 저 살아보게 하겠다고 매일 이렇게 저랑 동행 해주시는 아버지......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전 과연 혼자 바다를 지킬 수 있을까요? 엄두가 날 것 같지 않네요. 그땐 전 아마 배에서 내릴 겁니다.”

재연씨는 자신의 삶에 보탬을 주고자 아픈 몸 이끌고 배에 오르시는 아버지, 자신이 잡아온 생선을 고르고 손질하는 어머니, 젊은 나이에 장사를 하는 예쁜 색시가 있어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지금 이순간이 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 홀로 바다에 나올 때 지금 이 순간이 떠오르겠죠? 배에 시동을 걸어주고 어서 타라던 아버지와 묵묵히 지켜봐주던 어머니, 힘든 줄도 모르고 함께 해주던 집사람이 있었던 지금 이 순간이 전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다 가끔 두려울 때가 있어요. 아버지 연세도 있으시고 병도 그렇고... ‘지금 이 행복한 시간이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아들 재연씨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가족’이란 단어는 그에게 있어 자신이 낸 생채기 같은 존재라 말만 꺼내도 에리다. 그런 재연씨 뒤로 바다는 노래한다. 

‘괜찮을 거라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발전’이라는 바람이 부는 영종도에는 ‘백마호’를 이끌고 2대째 바다로 나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그들을 뭍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내가 있다.





*백마호 수산물 가격

갯가재(일명 '쏙') : 1kg 8,000원

망둥어 1kg 5,000원 

새우 1kg 8,000원

건망둥어 : 700g 10,000원

건새우 : 500g 10,000원  


이현주 객원기자 o7004@naver.com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