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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는 인천/인천역사

전통자수의 매력의 빠지다. 자수 이종애 작가



옷을 만들거나 뜯긴 옷을 꿰매는 것에서 시작한 바느질이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양반가의 여인들에 의해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전해지던 자수. 그 자수가 장식의 효과를 더하면서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화려한 듯 우아하고 곱게, 때론 거칠게 자수 이종애 작가의 손에서 비단실은 작품이 된다.







돋보기를 쓴 이종애(70) 작가의 손이 바쁘다. 바늘에 비단실을 꿰어 비단천을 오르내리며 그림을 그리 듯 수를 놓는다.  한 땀 한 땀 수놓아지는 형형색색의 비단실은 작품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 학을 완성시키고 있다. 조선시대 관료 중 으뜸인 영의정 관복의 중심을 장식하는 흉배다.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학의 수와 구름의 수가 다르고 모양도 달리한다. 아주 먼 옛날, 자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장식이 아니었고 아무나 여유롭게 놓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비단실을 매듭짓는다. “자수는 양반가의 안방마님과 별당아씨들만 놓았죠. 서민들은 자수를 배우지도 못했어요. 의복에 자수가 있는 옷을 입지도 못했고 비단옷을 걸치지도 못했죠. 그러니 자수가 얼마나 귀한 거예요.” 그리고 그의 손은 또 다시 움직인다.


자수는 놓는 방법에 따라 궁수과 민수로 엄격히 구분됐다. 궁수는 궁궐에서 사용되는 자수이고 민수는 민가에서 사용되는 자수다. 그 차이는 실의 꼬임이다. 궁수는 실을 꼬아서 사용하고 민수는 실의 꼬임이 없다. 금실 역시 궁수에서만 사용됐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민수에서도 금실이 종종 사용됐다. 그러나 궁수는 2가닥의 실을 사용하는 반면 민수는 1가닥만이 허락됐다. 왕가와 귀족, 높은 양반들의 옷과 장신구, 소품에만 사용됐던 자수는 지금도 귀하게 이어진다.






“너무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그 매력에 빠졌어요. 우아하게 늙고 싶었어요. 창가에 앉아 수를 놓고 있으면 얼마나 여유로워 보여요. 그래서 취미로 배웠지요. 45세부터 했으니 자수만 26년 됐네요.” 


그는 자수보다 먼저 전통한복을 배웠다. 31세 때부터 밤을 새워가면서 한복을 만들었다. 최고 많을 때는 하루 평균 3~4벌의 한복을 만들었고 저고리만도 7개를 만들었다. 그의 솜씨는 그 만큼 단단해졌다. 이후 자수의 매력에 빠진 그는 한복을 25년 만에 내려놓았다. 이후  자수는 삶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자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의 작품들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동안의 기간에 완성된다. 자수로 만들지 못하는 소품과 작품은 없다. 손거울의 뒷부분에 소담스러운 꽃을 피우고 바느질 상자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태양, 구름, 물, 산,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이 박혀있다. 작은 상자에는 복을 담자는 뜻으로 ‘백복백수’자를 새겼고 형형색색의 복주머니에는 다양한 꽃수를 놓아 복을 빌었다. 우리나라의 전통 오방색(빨간색, 노랑색, 검은색, 흰색, 파랑색)으로 만든 오방주머니는 어이들의 옷에 달려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그는 말한다. “자수는 작품입니다. 수를 놓다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죠. 좋아서 하는 것이니 힘들 지 않아요.”






그는 실력을 더 쌓기 위해 2012년 숙명여대 특설 전통자수전문과정을 수료하며 만학의 꿈을 펼쳤다. 인천공예인협회 자수분과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1국제전통예술대전 최우수상과 2010·2011 인천시 관광기념공모전 장려상 등의 수상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여러 번의 전시회도 열었다. 이종애 작가는 양반가 안방마님과 규수들의 덕목인 자수의 맥을 이으며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김민영 객원기자 gem0701@hanmail.net



자료 : 인천광역시 인터넷 신문